36장. 교육의 역설
공을 멀리 던지려면 손을 힘껏 뒤로 젖혀야 합니다.
높이 뛰어오르려면 몸을 한껏 낮춰야 합니다.
많이 채우려면 한껏 비워야 합니다.
많이 먹는 자 오래 못 먹고
많이 가진 자 오래 못 갖고
많이 아는 자 오래 못 가르칩니다.
강한 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이 약한 갈대입니다.
굳센 바위를 뚫는 것은 부드러운 물방울입니다.
뒤 서고, 낮추고, 비우고
부드럽게 가르치십시오.
노자의 언어는 역설의 언어입니다. 어디 노자뿐이겠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섬기라.”,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다.”, “가장 낮은 자에게 해준 것이 하느님에게 해준 것이다.” 이렇게 말한 예수도 역설의 대가였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현자는 공자입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말합니다. 낭떠러지 앞에서 멈춰야 합니다. 멈추지 못하면 떨어집니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허기가 졌을 때 먹는 음식이라 말했습니다. 산해진미에 물린 사람에게는 어떠한 음식도 별무소용입니다. 공복(空腹)이 최상의 조건입니다.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 “무지의 깨달음”을 배움의 왕도라고 생각하며, 아테네 사람의 무지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소크라테스의 역설입니다.
지(知)는 지(止)를 아는 것입니다. 멈춤은 정지나 후퇴가 아니라, 삶의 성찰하는 자리입니다. 전진을 위해서 가속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멈춤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말을 타고 질주하던 인디언은 가끔 질주를 멈추고 뒤를 돌아본답니다. 자신의 영혼이 제대로 따라오는지 보기 위해서. 그대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