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7개의 열쇠
1.
때는 전국시대. 중국의 각 나라들은 중국 재패를 목표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에 정나라의 몽(蒙)에서 태어난 것이 장자예요. 이름은 주(周). 그의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후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열전’에 보면, 장자를 고향에서 ‘칠원의 관리’를 했다고 전해지죠. ‘칠원’을 정원이라고도 하고 사냥터라고도 하지만, 뭐가 되었든 장자는 낮은 직위를 가진 가난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어요. 한 나라의 사관을 지냈던 노자와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죠. 한편 그의 가난은 ‘자발적 가난’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장자 ‘추수(秋水)’장에는 초나라 임금이 높은 벼슬을 주겠다며 장자를 초대하는데, 장자가 ‘신령한 죽은 거북’과 ‘진흙에 묻혀 사는 산 거북’을 비교하며, 자신은 진흙에 꼬리를 끌고 다닐지언정, 신령한 거북으로 대접받으며 죽은 듯이 살 수 없다고 말하며 초대를 고사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장자의 반정치적 성향을 잘 알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죠.
일찌감치 정치와 거리를 두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의 글에는 당시 위정자를 비판하는 내용과 당시의 전통과 고정관념을 부수는 비유적 표현들이 많이 나와요. 그렇게 기존 세계를 허물어뜨린 장소 위에 새로운 상상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지요. 그리고 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네요. 와트슨은 그 세계를 ‘자유(freedom)'라 말하고, 또 다른 장자학자 앨린슨(Robert E. Allinson)은 ’자기변신(Self-transformation)' 또는 ‘영혼의 변화(Spiritual trandformation)'라고 말했어요. 절충이 허락된다면, 장자의 세계는 자신변신을 통해 자유를 누리는 세계라 할 만하지요.
2.
그 세계로 들어가는 초대장이 바로 『장자』예요. 장자는 우선 이론과 논리로 중무장한 철학서와는 정반대의 전략을 수립하고, 그 속 곳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여 우리를 무장해체시킨 다음, 전혀 다른 사고와 삶이 가능하다는 초대장을 보내요. 그 초대장은 마치 놀이동산에서 체험하는 온갖 놀이기구처럼 우리의 혼을 빼놓고 정신을 잃게 만들면서 즐거운 웃음을 창조하지요.
장자가 초대하는 놀이동산 입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요. “어슬렁거리며, 마음껏 놀아라[逍遙遊]!” 그리고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맨 처음 소개한 변신이야기지요. 철학서의 시작이 설화로 시작되는 것에 당혹스럽지 않나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무릇 놀이동산에 들어가려면 정장 차림보다는 유쾌하고 발랄한 소풍 복장이 제격이잖아요. 인간의 논리력과 비판력을 우선적으로 해체하면서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 설화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른의 시선을 버리고 어린아이의 시선을 회복하는 것이며, 견고하게 무장된 논리의 시선에서 가볍고 경쾌한 상상의 시선을 회복하라는 장자적 장치이지요.
물고기(일상적 자아)가 물을 떠나 새(장자적 자아)로 변신하여 상상력의 날개를 펴고 수천 리의 하늘을 날아오르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네요.
낮은 하늘을 날면서 매일매일의 일상에 찌들어 사는 ‘매미와 새끼 비둘기’의 조롱을 뒤로한 채, 자유의 세계로 진입하자, 요(堯) 임금과 같은 최고의 지위에 오르려는 권력욕도 부질없어지고요. 오히려 허유(許由)에게 냉소의 대상이 되지요. 또 최신 유행하는 상품인 모자를 팔기 위해 월나라로 떠났던 송나라 모자장수의 원대한 포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아요. 월나라 사람들은 아예 모자를 쓰지 않기 때문이지요. 한편 기껏해야 가계 유지에나 도움이 되었던 손 안 트는 약이 한 나라의 전투에서 승리를 이끄는 결정적 도구가 되기도 하고, 너무도 크기만 하고 제목이 뒤틀어져서 쓸모없는 거목이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쉴 수 있는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내는 유용한 나무가 되지요. 기존의 가치를 조롱하고, 오히려 보잘것없고 쓸모없었던 것들이 최고의 가치로 승격되지요.
3.
이 가치역전의 여행이 천민의 입을 통해 지식인과 권력자의 삶을 조롱하는 데에 이르면, 장자가 누구 편에서 글을 썼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장자의 편들기는 노자가 권력지향적이었다는 점과 대조를 이루면서 노장철학의 스팩트럼을 한껏 넓혀놓지요.
백정 포정(庖丁)은 문혜군(文惠君) 앞에서 소를 잡으며, 놀라운 기술(技術)의 비결을 묻는 문혜군에게 오히려 도(道)를 가르쳐요. ‘두께 없는 칼날’의 이치로 문혜군의 고정된 생각을 해체시키지요. 귀신같은 솜씨를 지닌 목수 재경(梓慶) 역시 노나라 임금 앞에서 기술 대신에 모든 것을 잊고 대상과 ‘하나’가 되는 원리를 가르침으로 임금을 놀라게도 하고요. 또한 송나라의 원군(元君) 앞에서도 두 다리를 뻗고 벌거벗은 채로 그림을 그리는 화공을 등장시켜 인습과 형식에 얽매인 당대의 화풍을 조롱하네요. 심지어는 수레를 깎는 노인 윤편(輪扁)은 제나라 환공(桓公) 앞에서 환공이 읽는 경전을 '찌꺼기'라 말하는 불경을 범하여 환공의 노여움을 사지만, 도리어 노여움을 부끄러움으로 만드는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지요.
4.
그 정도에서 장자의 상상력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장자』의 빅카드는 ‘괴물’의 등장이지요. 그나마 천민들은 사회 구조에 최하층을 차지하며 조롱당하는 위치에 놓여있지만, 그보다 못한 장애인들 -사회적 괴물들 -은 구조의 바깥에서 안으로 진입할 수조차 없었어요. 지금도 장애인의 지위가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 당대에는 오죽했겠어요? 그런데 바로 그러한 장애인들이 『장자』에게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으로 등장해요. 『노자』가 ‘여성과 아이의 철학’이라면, <장자>는 ‘장애인의 철학’이라 할 만하지요.
등장인물만 간단히 소개할게요. 강도(强度)가 낮은 것부터. 외발이 우사와 광태, 신도가와 무지, 꼽추 지리소와 영우, 그리고 광인 접여, 꼽추에다가 추남인 애태타, 심지어는 절름발이에 꼽추이면서 언청이인 인기지리무신과 항아리처럼 큰 혹부리를 지닌 옹앙대영에 이르기까지,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 괴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고 튀어나와 우리의 눈과 정신을 놀라게 만들어요. 그래서 몸은 장애이지만 정신은 고결한 그들에 비해 몸은 멀쩡하지만 정신이 장애인 우리의 모습을 새삼 깨닫게 되지요.
5.
이처럼 정신의 높은 곳까지 올라 바라본 세상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해왔던 세상을 조롱하며 뒤집고 여태껏 비정상이라고 생각해왔던 세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게 만들어요. 장자는 이 모든 진술을 얼굴을 굳히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개그맨이 농담을 하듯 가볍고 경쾌하게 밀고 나가요. 장자에 깔려 있는 기본정조는 바로 이 웃음과 해학이지요. 그 해학이 고정관념과 만날 때 풍자로 돋을새김 되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와 내가 언제 그랬다는 듯이 이야기를 돌려요. 이 장자판 놀이동산은 그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요. 이 놀이동산을 경험한 사람은 대회전차를 탔을 때의 높이의 아찔함과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의 속도와 각도의 위태로움을 즐기게 되고, 온갖 괴물이 출몰하는 공포의 방을 거닐 때의 서늘함을 결코 잊지 못하고 다시 이 동산을 방문하게 돼요. 일상에서 해방감을 맛보고 싶은 자 누군들 장자를 찾지 않겠어요? 편견과 악습의 악순환을 끊고자 하는 자 누군들 장자를 벗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리하여 내가 물고기가 되고 새가 되고 나비가 되고 천민이 되고 괴물이 되는 수없이 많은 변신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자유의 세계로 어느새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자』가 바로 그런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