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충부(德充符)
『장자』의 놀라운 점은 기존 가치의 완전한 뒤집힘입니다. 이제 장자는 그 위대함의 모델로 아주 괴물과 같은 사람들을 등장시킵니다. 단순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 모습이 흉측하여 보기조차 거북한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제시되지요. 이른바 괴물(monster)의 등장입니다. 아래를 보시지요.
5-6
절름발이요, 꼽추요, 언청이인 자가
위나라 영공(靈公)에게 유세했다.
영공은 그에게 설복되었다.
그 후부터 온전한 사람을 보면
목덜미가 야위고 가냘프게 보였다.
커다란 혹부리가 제나라 환공(桓公)에게 유세했다.
환공은 그에게 설복되었다.
그 후부터 온전한 사람을 보면
목덜미가 야위고 가냘프게 보였다.
그러므로 덕은 오래가고
형체는 잊히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는다.
이를 일러 진짜 건망증[誠忘]이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러한 속박이 없는 자연에 노닌다.
그러나 지혜는 근심하게 하고
극기(克己) 약신(約身)은 새끼로 묶는 것이고
인의(仁義)의 덕은 교제하기 위함이고
교묘히 꾸미는 것은 장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성인은 꾀하지 않으니 지혜를 어디다 쓰며
쪼개고 갈라놓지 않으니 새끼줄을 어디다 쓰며
잃음이 없으니 덕을 어디다 쓰며
사고팔지 않으니 장사꾼을 어디다 쓸 것인가?
이 네 가지는 하늘의 양생(養生)이다.
하늘의 양생이란 자연이 먹여주는 것이다.
이미 자연에게 먹을 것을 받았으니
어찌 또다시 인군(人君)이 필요할 것인가?
장자의 진술에 따르면, 절름발이에 꼽추이면서 언청이인 인기지리무신과 항아리처럼 큰 혹부리를 지닌 옹앙대영이 나라의 지도자에게 발탁됩니다.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 나중에는 외모에 대한 판단의 기준마저 바꾸게 됩니다. 이전에는 정상이 아름다워 보였으나, 이제는 정상인을 보면 목덜미가 야위고 가냘프게 보이게 되었지요.
그런데 위나라 영공(靈公)과 제나라 환공(桓公)은 어쩌다가 이들에게 흠뻑 빠지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이들의 덕(德) 때문이지요. 외형적 모습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덕성에 가치를 두게 되면 겉으로는 멀쩡한 정상인도 한참 뒤떨어진 인간이 될 수 있고, 외모는 괴물처럼 겁나게 생긴 사람도 현인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어찌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한가요. 현실은 내면의 중요성은 망각하고 항상 외모를 숭상하게 되지요. 외모가 멋진 사람이 대접받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가 봐요. 그래서 장자는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면서 “사람들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는다”라고 말해요. 그리고 “이를 일러 진짜 건망증[誠忘]”이라고 말하네요.
우리 또한 이 진짜 건망증에 걸려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이 외모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동일하고 정당한 걸까요? 장자가 2장에서 원숭이, 고라니, 미꾸라지와 사람을 견주어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듯이, 아무리 아름다운 미인이라도 물고기가 보기에는 보자마자 도망을 칠만큼 흉측한 것은 아닐까요?
사람의 아름다움을 놓고 너무 비약하는 것은 아니냐고 말하고 싶나요? 그렇다면 아래 자료를 보세요. 어느 작품이 더 아름다워 보이지요. 가장 오른쪽의 작품도 비너스라는 것을 아시나요? 기원전 1만 년 전쯤에 제작된 <묄렌도르프의 비너스>지요.
아름다움이 이처럼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것이지요. 설령 절름발이에 꼽추이면서 언청이인 인기지리무신과 항아리처럼 큰 혹부리를 지닌 옹앙대영이 사회로부터 외면당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웬 줄 아세요?
그들은 세상의 기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박 없는 자연에서 노니는 성인(聖人)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는 세속적 지혜도, 인의의 덕도, 화려한 외모도, 교묘한 말솜씨도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억지로 일을 꾀하지 않고, 옳네 그르네 판단하지 않고, 애당초 잃을 것이 없으며, 사고파는 거래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인위적인 장치들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이지요. 장자는 이를 ‘하늘의 양생(養生)’이라 하네요.
저는 하늘의 돌봄을 믿고 살아갔던 위대한 성인 한 명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입니다. 그는 출가하여 죽기까지 제자들과 함께 걸식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일정한 거처가 없는 노숙자였으며, 벌이라는 전혀 없는 실업자였고, 가족에게는 미친놈 취급을 받았으며, 결국은 종교와 권력을 위협하는 혁명가로 죽임을 당했지요. 그럼에도 그는 항상 당당했고, 기존의 가치 따위는 염두에 주지 않았고, 오직 하늘의 뜻만을 묻고 실천하며 살아갔습니다. 반대자들에게는 ‘먹보와 술꾼’이라는 막 돼먹은 별명을 얻었지만, 그는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드러내는 용어로 재사용했습니다. 그런 그가 말합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하늘 아버지께서 공중에 새들과 들판의 꽃들을 보살피시거늘 하물며 너희들이랴?”
속절없이 변하는 인간 세상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하늘에게 자신의 양식줄을 대는 예수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받은 인기지리무신과 옹양대영은, 세상의 평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아요. 대신 속박 없는 자연과 노니는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외모로 인해 늘 자신이 없었던 사람은 장자의 충고를 들을만하네요. 장자는 말합니다. 외모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현실의 가치와 기준을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차라리 생긴 대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늘에서 그대에게 먹을 것을 줄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자유로 향하는 다섯 번째 열쇠를 찾았네요. “외모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장자 Tip
1. 외모 따윈 신경 쓰지 마라. 차라리 생긴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라.
2. 외모는 잊히고 덕은 오래간다.
3. 잊어야 할 것을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마라. 그 반대는 아니다. 망각은 기억의 상실이 아니라 가치의 상실이다.
4. 그대를 속박하고 있는 것을 하나 둘 벗어나라. 자연에서 양식을 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