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교화는 교화하는 바가 없다
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너희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라’고 이 같은 생각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야! 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아니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여래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장을 가지고 있음이라.
2. 수보리야! 여래가 내가 있다고 한 것은 곧 내가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러나 범부들은 내가 있다고 한 것에만 집착한다. 수보리야! 그러나 여래는 말한다, 범부라는 것도 범부가 아니라고.”
須菩堤。 於意云何? 汝等勿謂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堤。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如來度者。 若有衆生如來度者, 如來則有我人衆生壽者。 須菩堤。 如來說有我者, 則非有我, 而凡夫之人以爲有我。 須菩堤。 凡夫者, 如來說則非凡夫。
짧은
Subhuti, what do you think? Let no one say the Tathagata cherishes the idea: I must liberate all living beings. Allow no such thought, Subhuti. Wherefore? Because in reality there are no living beings to be liberated by the Tathagata. If there were living beings for the Tathagata to liberate, He would partake in the idea of selfhood, personality entity, and separate individuality.
Subhuti, though the common people accept egoity as real, the Tathagata declares that ego is not different from non-ego. Subhuti, whom the Tathagata referred to as "common people" are not really common people; such is merely a name.
<짧은 명상>
원각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면 如人以手指月示人
그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보아야 한다. 彼人因指當應看月
만약 달 대신 손가락을 본다면 若不觀指以爲月體
그 사람은 달도 볼 수 없을뿐더러 此人豈唯亡失月輪
가리키는 손가락도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 亦亡其指”
손가락은 방편이요, 달은 진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 달은 사라지고 손가락만 남는다.
금강경으로 돌아가 보자. 부처는 방편상 부처와 나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처와 중생은 나뉘지 않는다. 둘 다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제도할 부처도, 제도당할 중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고 말했으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있음’에만 집착한다. 패착이다. 그래서 부처는 다시 경고한다. 중생은 중생이 아니다.
옛날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갸루상의 언어로 말해보자.
“그럼 너는 뭐야?”
“나는 사람이 아니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