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단상 11 : 타자의 존재론

#타자의 존재론

by 김경윤
내가 구상한 세계가 ‘유한의 세계’라면 타자의 세계는 ‘무한의 세계’이다.


레비나스의 존재론은 ‘타자의 존재론’이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억압하거나 무시하거나 생략했던 존재인 ‘타자’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우리가 자연을 벗어나 살 수 없듯이, 우리는 타자를 벗어나 살 수 없다. 그런데 지배적인 존재론에 사로잡힌 우리들이 마치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우리가 타자를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겼다. 공존과 공생이 무너지고 독점과 기생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다. 타자 위에 군림하며 사는 삶이 오래되자 타자의 목소리도 얼굴도 잊고 지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우주의 무한에 비해 지구는 얼마나 작은가? 우주학자 칼 세이건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했다. 지구 상의 모든 존재에 비해 나는 얼마나 작은가? 이 작고 유한한 나를 생각한다면 타자는 얼마나 무한한가? 우리가 그들을 지배할 수 있다고? 불가능하다. 내가 구상한 세계가 ‘유한의 세계’라면 타자의 세계는 ‘무한의 세계’이다.

그 무한의 존재인 타자는 종교적으로 말하면 마치 신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신과 같은 타자가 우리에 의해 지배당함으로써 피투성이가 되고 버려진 존재가 되었다. 우리에게 낯선 자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외면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레바나스는 그 피투성이가 된 낯선 타자의 얼굴을 이제는 봐야 한다고, 그들에 대해 책임과 헌신을 다해야 한다고 명령조로 외친다. 나의 자유를 위해 타자의 자유를 지키라고 말한다.


“타자는 타자로서 높음과 비천함의 차원에 스스로 처해 있다. 영광스러운 비천함. 타자는 가난한 자와 나그네, 과부와 고아의 얼굴을 하고 있고, 동시에 나의 자유를 정당화하라고 요구하는 주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 레비나스, 《존재와 다르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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