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헷갈린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내가 생각해낸 것인지, 어디서 읽은 것인지, 남에게서 들은 것인지. <전도서>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위로를 주지만, 확신할 수 없는 출처불명의 생각이 머리 속에서 튀어나올 때 조금은 당황스럽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이를 먹어가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아는 지인들끼리 술자리를 하는데 K가 마치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처럼 우스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사실은 내가 K에게 해준 이야기였다. 지인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즐겼고, 나 또한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K에게 내가 해준 이야기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출처를 밝히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야기는 돌고 도는 거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혹시 그런 것은 아닐지. 나의 장례식이야기다. 하늘이 허락해준다면 나는 급사(急死)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치의 병이 걸리더라도 나의 죽음의 시간을 어느 정도 가늠했으면 좋겠다. 죽음의 시간을 미리 아는 시간에, 아직은 정신이 남아있을 때, 나는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 통상 장례식은 죽어야 치르는 것이지만, 나는 생전에 장례식을 치를 계획이다.
장소는 아름다운 곳을 고를 것이다. 비싼 곳이 필요는 없다.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면 된다. 아, 지인들이 하룻밤은 묵어갈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음식은 나와 가족들이 정성스럽게 만들 것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같이 나눌 음식을 한 가지씩만 가져오라고 청해야지. 그리고 나의 죽음을 기억할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골라서 초대할 것이다. 부조금은 절대 금지. 돈으로 나의 장례를 채우고 싶지는 않다.
인생이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지만, 한 50여명쯤은 초대할 수 있겠지. 그들과 함께 즐겁게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할 것이다. 평생 못 푼 매듭이 있다면, 마음을 비우고 후회 없이 풀고 싶다. 나에게 아쉬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겸허히 듣고 용서를 빌고 싶다. 나에게 고마운 말을 해주는 사람들과는 호쾌하게 한 잔도 나누고 싶다. 그럴 리는 없지만, 나에게 빚진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빚잔치를 해줄 것이다. 내가 빚진 사람이 있다면? 능력이 닿는 만큼 갚으며 용서를 빌 것이다.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이 죽고 싶다.
장례식장 한 켠에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 노래방 기계도 하나 설치해볼까? 100점이 나오면 작은 선물도 주고 싶다. 혹시 밴드를 초대할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쁠 것이다. 맏아들이 연주를 잘 하니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급조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고마울 것이다. 아들과 친구들의 연주에 맞춰서 지인들이 노래를 부른다면 한층 분위기가 좋겠구나. 가족들도 노래 한 곡 씩 했으면 좋겠다.
장례식이 끝날 쯤 짧은 연설을 하고 싶다. 너무 길지 않게 한 5분쯤. 살면서 얻었던 지혜를 나누고 싶다. 연설 속에는 재산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물려줄 것이 별로 없으니 재산상속문제로 가족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싸울 가족도 아니지만. 아참, 내 책들이 있었구나. 평생 읽고 간직한 책들이 내 최고의 재산이 될 것이다. 찾아온 하객에서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게 하고 싶다. 그들이 죽을 때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선물한다는 것을 전제로.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에 많은 책은 필요 없을 테니까. 책상용 책꽂이의 반 정도만 남겨놓고 나 선물해야지. 평생 읽었던 성경책 한 권, 웃음을 주는 열하일기, 니체 말년의 책 몇 권, 스피노자의 에티카, 소크라테스의 변명 쯤이 남으려나. 연설의 대부분은 아마도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지. 살았던 것 자체가 고마움이니.
아침이슬을 부르는 김민기와 양희은
장례식의 끝은 합창을 했으면 좋겠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쯤이 어떨까. 젊었을 때부터 같이 불렀으니 합창으로는 딱이라고 생각한다. “긴밤 지새우고”로 시작해서, “태양은 묘지 위로 붉게 타오르고”에서 어깨를 걸고,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로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로 클라이막스가 되는 이 노래는 장례식 노래로도 참 좋을 것 같다.
생전 장레식을 마친 후 나머지 생애 동안은 가족과 함께 조용히 지내다가, 집에서 단식을 해서 깨끗해진 몸으로 조용히 죽겠다. 죽음이 고통스러우면 몰핀 한 방쯤은 의존해도 괜찮겠지. 진짜로 죽게 되면 가족들끼리만 조용히 나머지 절차를 밟았으면 좋겠다. 죽자마자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터로 가서 불에 내 몸을 맡겨야지. 흙에서 태어난 몸이니 불을 통해 흙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남은 재를 모아 내가 살았던 동네에 뿌리면 된다. 그리고 가족들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는 동안 힘들었겠지만 죽어서는 평안해졌으니. 가족도 평안히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동안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겠지만 잊혀진다고 해도 괜찮다.
죽음은 슬픈 일이 아니다. 슬프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슬프기 위해서 죽는 것도 아니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다른 모습일 뿐이다. 나는 웃음으로 삶을 살았듯이, 웃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삶이 존엄하듯이, 죽음도 그렇게 존엄하게 맞이하고 싶다. 그러니 죽어가는 사람, 구태여 살리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또 죽을테니까.
P.S, 그런데 느닷없이 갑자기 죽으면 어쩐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 또한 죽음의 한 방법일 테니까. 에이 이건 아니잖아, 한마디하고 피식 웃으며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