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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Sep 21. 2020

2020 독서노트 89 : 기생충과 가족

고미숙, 《기생충과 가족, 핵가족의 붕괴에 대한 유쾌한 묵시록》(북튜브)

영화 <기생충>은 핵가족과 냄새와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삶은 계급이나 학연, 지연 따위로 구별되지 않는다. 욕망도 외모도 능력도 ‘초균질화’되었다. 오직 냄새로만 구별된다. 코로나 역시 그렇다. 계급도 인종도 성별도 세대도 개의치 않는다. 오직 신체상태(혹은 면역력)만이 최종심급‘이다. 이 지점에서도 기생충과 코로나는 대칭적이다. 둘이 전하는 메시지도 서로 통한다. 사방 어디에도 출구가 없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이 책이 이런 미증유의 시간대를 건너가는 ‘소박한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9쪽)     


고미숙 인문학자의 글은 언제나 유쾌하다.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함께 수다를 떨고 생활하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이번 책도 그가 운영하는 남산강학원과 감이당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책자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전에 냈던 책보다 훨씬 슬림하고 가볍다. 가격도 1만원이다. 북드라망 출판사가 유튜브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책자형태로 만들면서 ‘북튜브’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 북튜브 가족특강 시리즈로 기획한 책 6권 중 1권에 해당하는 것이 고미숙이 쓴 《기생충과 가족, 핵가족의 붕괴에 대한 유쾌한 묵시록》이다.      

고미숙은 영화 <기생충>이 나오기 전부터 봉준호 감독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제작한 굵직한 영화들은 모두 고미숙의 글 속에 등장하여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영화 <괴물>, <설국열차>, <옥자>와 <기생충>을 비교하며 설명하는 대목이 재미지다. <기생충>이전에 나온 영화는 영화의 주인공들이 ‘비정상’ 가족이라는 점에 주목한 점도 흥미로웠다. 4편의 영화를 모두 본 나로서도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고미숙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괴물>, <설국열차>, <옥자>에 나온 주인공들이 비정상 가족의 일원이었기에 탈주와 용감한 시도가 가능했었다는 점, 그런 의미에서 정상가족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생성이 도드라진다는 점, 그래서 맞대결하는 권력이 어떠한 형태이든 - <괴물>에서는 위생권력, <설국열차>에서는 계급권력, <옥자>에서는 식품산업권력 – 좌충우돌하며 돌파하는 비정상 가족구성원의 활약이 돋보였구나 생각하기에 이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고미숙은 <기생충>을 계급대립의 영화로 보지 않는다. 이미 현대사회에 와서는 그보다 더욱 공고한 최종심급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핵가족’이다.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핵가족’이란 이름의 사회구성체. 그러고보니 이선균네 가족도, 송강호네 가족도 이전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비정상’ 가족이 아니라, 완벽한 ‘핵가족’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 눈에 들어온다. 아빠-엄마-아들-딸로 구성된 이 완전체에 가까운 두 가족이 결국 파국에 도달하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기생충’이다.

고미숙은 이 핵가족(기생충)과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칭성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지만 핵가족이야말로 억압과 소외의 온상이며, 더 풍성하게 살아가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폐쇄회로 속에 가족을 가두는 단위였던 셈. 게다가 디지털 환경은 부유한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차이점도 일거에 붕괴시켜 욕망도 외모도 능력도 ‘초균질화’ 시킴으로 반지하에 살고 있었던 가난한 가족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부유한 가족으로 스며들어 기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만든다. 이제 차이가 나는 것은 오직 ‘냄새’뿐이다. 그리고 이 냄새야말로 온갖 비극의 씨앗이 된다.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4편의 영화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고미숙의 통찰을 통해 읽어내는 것도 재미나고, 만약에 고미숙의 생각처럼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의도적으로 그러한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한 것이라면 봉준호의 천재성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이다. 이 소책자는 봉준호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눈여겨 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고미숙이 영화에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영화에 문외한이지만, 인문학의 대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이기도 하다. 인문학적 영화 읽기의 능력이 한껏 발휘된 이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또 한 번 책을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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