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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Sep 13. 2020

2020 독서노트 88 : 김종철 사후 녹색평론

녹색평론 174호(2020년 9-10월)

저의 생명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환대의 사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한테 무조건적으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걸 환대라고 합니다. 한때 외국에 갔다 온 사람들 중심으로 똘레랑스라는 말을 많이 했죠. 나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도 용인해야 된다. 우리나라는 의견이 다르다고 탄압을 하고 배척을 한다, 후진적이다, 이런 말들을 했는데, 똘레랑스와 환대는 근 본적으로 다릅니다. 똘레랑스는 굉장히 근대적인 개념입니다. 유럽에서 종교전쟁을 오랫동안 했잖아요. 개신교다 구파다 신교다 갈라져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가지고 유럽 전역이 수십 년간 피바다가 됐어요. 그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것이 똘레랑스입니다. 종교적 신념이 다를지라도 공존해서 살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괴테 같은 사람은 똘레랑스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라고 얘기합니다. 왜냐, 이건 강자가 약자를 좀 봐주자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환대는 철저하게 비근대적(전근대적)인 개념입니다. 고대부터, 말하자면 자본주의 산업문명이 들어와 지배하기 전까지 모든 문화가 존재했던 민초들의 윤리예요. 지구상 어느 지역에나 다 있습니다. 이게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에스키모, 아마존의 부족사회입니다. 거기서는 아직도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환대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실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화가 살아있었습니다.(129~130쪽)     


《녹색평론》(174호, 2020년 9~10월)를 구입했다.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 나온 첫 책이다. 사실 ‘녹색평론=김종철’이라 할 만큼 김종철 없는 녹색평론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선생과 함께 활동해온 사람들이 힘겹게 뒤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며 책을 발간하였다. 무조건 환영한다. 앞으로는 빠지지 않고 책 구입으로 응원하겠다고 나도 다짐한다.

이번 책은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신 직후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추모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평소에 김종철 선생과 다양한 인연이 있었던 필자들이 기억과 추모의 글을 전해왔다. 김종철 선생에게 깊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대담으로 김종철의 의미를 짚고, 김호기, 박인규, 조성옥, 천규석, 백낙청, 최용탁 등 다양한 문인과 평론가, 사회활동가들이 추억과 사상을 전해주었다. 기억에 남는 글은 창비의 백낙청 선생과 김종철의 추억이 담긴 글이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오랜 시간 인연을 맺으며 갈등하고 화해하는 모습이 아련하다. 추억의 마지막 편에는 김종철 선생이 2019년 10월에 원주 무위당기념관에서 행한 강연을 녹취하여 발췌한 ‘생명사상과 환대의 윤리’를 실었다. 위에 인용한 글이 그중 일부이다. 명강연이다. 일독을 바란다.


무릇 작가라면 자신의 글이 실리고픈 잡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녹색평론》이 그런 잡지이다. 능력도 안 되고, 인연도 안 돼서 잡지에 글 한 줄 싣지 못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싶기는 하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사태가 나를 많이 단련시켜주었다. 헛된 욕망을 좇았던 시간을 줄이게 해 주었고, 무분별한 소비에 빠졌던 행태를 불가능하게 해 주었다. 위기와 재난이 준 일침이었다.


비록 김종철 선생은 갔지만, 이번 잡지에도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기후 위기의 출구를 찾는 <특집>에서는 특히 농(農)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국주의적 자본주의가 어떻게 농(農)을 포획하여 자본화했는지, 그렇게 포획된 농(農)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농(農)은 농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이며, 인류 삶의 방식의 문제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전지구적인 경제시스템의 행동윤리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식량위기가 닥칠 경우, 전쟁의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이를 미연의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인들의 시로 갈무리하고 있는 이 책에서 평소에 인연 깊었던 정우영 형, 김해자 누나, 황규관 후배의 시가 가슴을 울린다. 아, 한 시대가 갔지만, 아직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김종철’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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