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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ug 28. 2020

2020 독서노트 87 : 김탁환,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라》(해냄, 2020)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교실에서 나무 바닥이 사리진 지 오래다. 농촌의 학교 교실도 더 이상 나무로 바닥을 깔진 않는다. 곡성 폐교에 와서야 겨우 낡은 책걸상과 함께 나무 바닥을 발견한 것이다.

유년 시절, 나 역시 그처럼 꿇어앉아 교실 바닥에 초질을 했다. 무릎이 시리고 어깨가 아프고 손가락이 저린 청소 시간을 싫어한 나와는 달리, 소년 이동현은 공들여 초를 칠하고 헝겊으로 훔쳐 매끄러워진 바닥에서 번뜩이는 빛이 좋았던가 보다. 힘써 가꾼 후 찾아든 아름다움이 소중했던 것이다.(47쪽)     


김탁환이 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라》(해냄, 2020)을 읽었다. 이 책은 서울에 사는 68년생 87학번 도시소설가 김탁환이 곡성에 사는 69년생 88학번 농부과학자 이동현을 만나 함께 한 삶, 생각, 언어를 정리하여 풀어쓴 책이다. 책의 주인공은 이동현이고, 화자는 김탁환이지만, 김탁환은 그냥 관찰자의 시점이 아니라, 이동현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자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두 주인공이 교차하며 빚어낸 책이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소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씨앗이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빗대어 두 사람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교차하며 담아낸다. 1장 ‘발아’에서는 각자 마음속 깊이 간직한 한 글자를 떠올리며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것을 되새긴다. 2장 ‘모내기’에서는 미실란의 창업과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과정을 가감없이 들려준다. 3장 ‘김매기’에서는 각자 맞이한 위기 앞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4장 ‘추수’에서는 사람을 존중하고 건강한 문화가 있는 기업과 행복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실천해온 노력의 결실을 보여준다. 5장 ‘파종’에서는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마을에 필요한 적정한 기술을 도입할 때 사람과 사회에 미래가 있음을 강조한다.”


나는 64년생 83학번 얼치기 도시농부이자 인문학자로 이 책을 읽는다. 코로나가 발병률이 더욱 극심해져 도서관에 유배처를 마련하고, 읽고 싶은 책을 하염없이 읽으며, 쓰고 싶은 글을 노동하듯이 쓰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김탁환×이동현×김경윤이 겹쳐지는 것이다. 김탁환이 이동현을 만나며 품게 된 문제의식은 도농복합도시인 고양시에 이주하여 내가 갖게 된 문제의식이고, 이동현이 곡성에서 ‘미실란’을 운영하며 품었던 문제의식은 내가 고양에서 ‘고양시도시농업네트워크’를 통해 얻게 된 문제의식이었다. 말인즉, 김탁환의 글을 읽으며 나는 수없는 기시감(旣視感, Déjà Vu)을 느꼈다.


김탁환의 논지는 ‘농農’을 살리려면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고, 나는 도심 속에서도 ‘농(農)’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마을에 대한 재발견이라든지, 공동체에 대한 강조는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숫자가 아니라 내용이다. 돈이나 명예는 수단이며 떠 중요한 가치는 행복인 것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또 내가 사는 마을은 어떤 마을이 되어야 마을 사람들 모두 행복할까?”에 대한 우리의 대답일 것이다. 

책의 제목 말마따나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라면, 무엇을 아름답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안목과 어떻게 지켜야 할지에 대한 방법론, 얼마큼 우리가 지킬 수 있을 지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다. 지킴 없는 변화 없고, 변화 없이 지킬 수도 없다. 하루가 다르게 지켜야 할 것들이 무너지고 있는 재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묻고 또 묻는다. 

자, 여기 무너지는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김탁환의 답은 이렇다.

 “곡성을 비롯한 우리네 마을들을 들여다보라.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약하고 병든 생명을 돈이 되지 않는다고 내치진 않았다. 어떻게든 마을에서 어울려 살 방법을 찾았다. 조금씩 짐을 나눠지면서,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세월이 수백 년인 것이다.

이렇게 쌓인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의 전통이 존중받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빛바랜 낡은 유산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들을 아끼고 지키면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마을로 가서 누구와 이웃하며 살 것인가. 거기 당신의 미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을 마을로 받아들여 함께 살 것인가.” (276쪽)     

여러분의 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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