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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ug 26. 2020

2020 독서노트 85 :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어크로스, 2020)

운동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고? 운동할 기운 자체가 없다고? 그러면 일단 쉬어야 한다. 이때는, 윈스턴 처칠의 조언을 경청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묻자, 처칠은 이렇게 대답했다. “에너지 절약이 관건이다. 앉을 수 있는데도 서 있어서는 안 된다. 누울 수 있는데도, 앉아 있어서도 안 된다.”

공부에 있어 이처럼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아널드 슈워제너거나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근육 덩어리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저들이야말로 적합한 인재들인데! 그 몸을 가지고 왜 영화배우를 했어! 대학원에 갔어야지! (103~4쪽)          


2018년도에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은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2019년도에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읽었을 것이다. 그 사람 중 대부분은 2020년도에 출간된 《공부란 무엇인가》(어크로스)를 읽기를 희망할 것이다. 지난주부터 사전에 주문하여 오늘 서점에서 받아 읽은 《공부란 무엇인가》는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나 재학생, 그리고 동료 교수들이 설 삼아 읽기에 좋은 책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강호(江湖)에서 자학(自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조금은 생뚱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책에서도 김영민 고유의 유머가 담긴 문체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위의 인용구도 그런 유머 코드가 담겨있지만, ‘이 수업은 여러분들의 지적 변화를 목표로 합니다 – 수업 첫 시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이 가장 웃겼다. 그중에서도 내가 배꼽 잡고 웃었던 대목은 여기다. 

    

“성적 관련 사안에 대해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저도 두려워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듣자 하니, 자식들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서 통사정을 하거나, 떼를 쓰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하더군요. 참 난감할 것 같습니다. 대학은 유치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성인이고, 성인이라면 스스로 똥오줌을 가릴 줄 아는 것처럼, 자신의 성적 역시 스스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엄마에게 독립영화를 찍어달라고 한 뒤, 그 영화를 들고 독립영화제에 참가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강조했는데도 성적이 안 좋다고 여러분들 엄마가 연구실에 찾아와서 저를 괴롭히면, 저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엄마를 불러올 수밖에.” (80~1쪽)     


김영민의 글쓰기에서 가장 부러운 점은 무겁게 이야기할 부분을 가볍게 유머로 톡 치고 넘어가면서도, 그 진지함이 천박함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문체는 하이 코미디적(?)이다. 그가 속해있는 대학이 서울대학이고 보면, 이 책에 나와있는 웃픈 부분들이 적어도 서울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고 자임하는 곳조차도 교육현장에서 이러저러한 우스꽝스럽고 공개하기 창피한 수준 낮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대략 난감하고, 조금은 씁쓸하다.


어쨌든,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공부의 길, 공부하는 삶, 공부의 기초, 공부의 심화, 공부에 대한 대화 등을 다루고 있으며, <중앙 SUNDAY>에 일부가 개재된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학부나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참고할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대학생들에게 우선 권한다. 이미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 읽어서 안 좋은 것은 없다. 그의 글은 어떠한 소재를 다루든지 나름 보편적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 있으니까. 그의 글을 읽다가 자신의 처지와 잘 맞지 않아 조금 아쉽다면, 책 중간중간에 전면에 걸쳐 칼라로 소개되는 29편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으로 위로를 받기 바란다. 모두가 책과 관련된 명화들인데, 글을 읽다가 쉬는 장소를 마련하여 피로감을 덜어주는 것 같아, 영특한 편집력이 돋보였다. 


<추기> 나는 그 그림 중에서 161쪽에 소개된 퀸트 부흐홀츠Quint Buchholz의 <여름바람Summer Wind>(2013)이 가장 마음에 든다.  아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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