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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ug 19. 2020

2020 독서노트 84 : 마음을 움직이는 장자 셀렉션

조현숙, 《마음으로 읽는 장자》 (책세상, 2014)

말은 바람이나 물결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행동함에는 얻고 잃는 것이 있습니다. 바람과 물결은 쉽게 움직이고, 얻고 잃는 것은 쉽게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분노하게 되는 것은 모두 간사한 말과 치우친 언사 때문입니다. …… 정도를 지나치면 넘치게 마련입니다. 명령을 바꾸는 것이나 억지로 이루려 하는 것은 모두 위험한 일입니다.

좋은 일은 성사되려면 시간이 걸리게 마련입니다. 한번 잘못된 일은 고칠 수도 없으니 신중하셔야 합니다. 노니는 마음[遊心]으로 일의 흐름을 타고 마음을 기르십시오 [養中]. ‘그냥 그대로의 흐름’에 맡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136쪽)    

 

장자는 문제적 인물이다. 《장자》는 문제적 작품이다. 논리적으로만 설명하려면 논리가 상충한다. 만약에 학자가 《장자》를 설명하려면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책 자체가 논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로만 접근하기에는 진지한 인생 이야기가 있다. 뇌를 자극하는 책이 있고, 오감을 자극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마음을 감동시키는 책이 있다. 저자는 가장 뒤엣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마음으로 읽는 장자'이다.


장자는 위험한 시대인 전국시대를 살면서, 무엇보다 목숨을 귀히 여긴 사람이다. 이념형 인물이 아니라 생계형(?) 인물인 셈이다. 살아야 살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말들을 직선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돌려 말하고, 비틀어 말하고, 비유하여 말한다. 장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그에게 소송을 걸 수는 없다. 장자는 늘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장자의 가장 놀라운 점은 독자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성겨서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의 말은 높아서 낮은 곳에 있으면 가늠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의 말은 깊어서 그가 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의 말은 넓어서 좁은 전문적 시선에는 시작과 처음이 잘 안 보인다. 한마디로 무식하게 정리하면 그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인물이다.

《장자》를 읽는 방법도 다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읽을 수도 있고, 장자가 직접 썼다고 이야기하는 ‘내편’만 읽을 수도 있으며, 독자의 관심과 취향에 맞추어 관련 에피소드만 읽을 수도 있다. 주제별로 에피소드를 모아 읽을 수도 있고, 특정한 주제를 깊이 파고들 수도 있다. 그에 따라 전편을 완역한 책(조현숙의 《장자》의 경우)도 나오고, 내편을 해설하는 책(오강남의 《장자》의 경우)도 있으며, 주제별로 엮는 책(현재 내가 연재하는 <장자의 맛>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에 따라 10만여 자가 되는 책은 분량이 다른 책으로 독자를 만나게 된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 《마음으로 읽는 장자》 (책세상, 2014)는 2016년 장자 전체를 완역한 책을 낸 조현숙이 13개의 주제로 장자의 글을 발췌하여 번역문과 한자 원문을 소개하는 주제별 장자 글 모임이다. 그가 묶은 주제는 다음과 같다. 슬픔, 길 잃은 사람들, 위험한 앎, 돈, 쓸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운명, 즐거움,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들, 세상의 본래 모습, 죽어가는 마음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사랑, 돌봄 등이다.

전문을 내리읽는 풍성한 독서도 가치 있지만, 주제별로 콤펙트하게 필요한 부분만 소개하는 책은 관련 주제에 대해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뜻한 맛이 있다. 이번에 조현숙이 엮은 책은 해설은 거의 없고 관련 내용만 번역하여 소개함으로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다양한 생각과 발상을 일으키기에 좋은 책이다. 한문 실력을 어느 정도 갖춘 독자라면 조현숙의 현대적 번역을 원문과 비교하면서 그의 번역이 얼마나 심사숙고한 번역인지 알 수 있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장자》의 글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하여 수없이 소개되고, 수없이 번역돼도, 또 다른 번역과 해설이 가능한 책이다. 평생을 우려먹어도 그 맛과 향이 사라지지 않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러한 책 중에 정성 들여 장자 글을 뽑아 엮은 조현숙의 책은 번역만으로도 역작이라 할만하다. 6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장자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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