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적 명철보다도 윤리적 결백보다도 종교적 열광보다도 무엇보다도 먼저 ‘언어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생각과 '나'의 감각에 격하게 저항하는 것을 '나의 말'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나'의 언어적 용량을 확대해나가는 것, '나'의 것이 아닌 문법과 '나'의 것이 아닌 어휘를 이용해서 그럼에도 '나의 말'을 말할 수 있는 것, 그러한 언어의 연마를 통해서 끊임없이 '나'를 세우고 무너뜨리고 변화시키고 파괴하고 창조하는 것.(315쪽)
책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구입하는 작가들이 있다. 일본의 지성 우치다 타츠루는 그중에 하나다. 이번에 《망설임의 윤리학》(서커스, 2020)이라는 신간이 나온다는 소문에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지역서점에 주문하여 어제 손에 쥐었다. 책 소개를 보니 2001년에 저자가 쓴 첫 번째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책이 이제야 번역이 되어 나온 것이다. 저자는 1950년에 태어나 40대 초반인 1990년에 고베여학원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 첫 책을 쓴 것이다. (50의 나이에 첫 책이라……) 물론 이 첫 책은 단행본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이라는 블로그에 쓴 다양한 글들을 눈 밝은 출판사 편집자가 보고 출간하자는 의뢰를 해서 성(페미니즘), 전쟁, 이야기라는 큰 주제로 관련 글들을 엮은 것. 이 책이 나오고나서 저자의 운명은 급속하게 변화하여 지금은 50여 권의 단독 저서와 60여 권의 공동 저서와 대담집을 발표했으니, 이 책이야말로 저자에게는 행운의 책인 셈이다.
책의 내용을 보니 1990년대를 배경으로 쓴 책이라 격세지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 걸.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감각이 떨어지지 않는 글들이다. 오히려 70이 넘은 지금의 저자보다 날이 서 있어 청년(?)의 기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요즘 나온 책들과 비교해볼 때 공통된 것이 있으니, 이는 이 책을 번역한 박동성의 ‘옮긴이의 글’에 잘 표현되어 있다. 살짝 옮겨 보면 “우치다 선생님의 책을 읽어본 분들은 다들 느꼈겠지만 선생님은 ‘남들이 결코 사용하지 않을 어휘 꾸러미’와 ‘남들이 구사하지 않을 것 같은 논리’ 그리고 ‘남들이 문제로 여기지 않을 것 같은 것에 문제라고 생명력을 부여하여’ 글을 쓰는 분” (389쪽)이다. 그러니까 우치다 타츠루의 글은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의 글쓰기는 과연 남들과 뭔가 달라도 다르다. 나는 다른 사상가와의 차이점을 ‘실감(實感)’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여기서 실감이란 어려운 말로 꼬아놓은 철학적, 정치적, 문학적 글쓰기를 생활상의 언어로 너무도 간단하다 싶을 정도로 명료하게 다시 표현하는 그의 능력이다. 읽다 보면 뭔 말인지 헛갈릴 때, 우치다 선생은 그 말은 이런 말이지요?라고 물으면서 본질에 육박해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우치다 선생의 글쓰기가 단순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순하기는커녕, 너무도 단순한 이분법적, 권력적, 지배적 언술에 “이렇게 보면 참으로 곤란하지요.”라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실감나는 현실은 그렇게 일도양단으로 나눠질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흑과 백 사이에 간격을 벌여놓고, 그 간격에 놓인 풍부한 이야기들을 제시함으로써, 사유를 더욱 깊게 만드는 놀라운 필력을 가지고 있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박사학위 논문 정도의 난해한 문제점을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어휘 수준에서 다시 진술하고, 그 진술을 고도화함으로써 일상어로도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지평으로 다시 전개할 수 있는 드물고 귀한 사상가이다.
책에는 페미니즘이나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이 다수 실려 있는데, 평소에 이러한 사상에 친화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내가 그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친화성 속에 숨어있는 사상과 생활 사이의 빈틈, 난점, 애매모호함, 찝찝함을 탐색하여,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편하기도 하지만, 요렇게 불편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렇게 원래 품었던 선의의 의도와는 다르게 반대되는 생각으로 이끌어지기도 한답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러냐고? 읽어보면 알게 된다.)
우치다 타츠루는 사상을 사상 그 자체로 다루지 않고, 사상이 생활 상에 끼치는 영향에 더욱 주목한다. 교단의 인문학이 아니라, 거리의 인문학이라 할만한 태도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사상가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무엇을 읽던지 ‘실감’ - 추상감이나 정의감과는 다른 – 이 났던 것이다.
제목으로 선택된 ‘망설임의 운리학’은 저자가 카뮈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카뮈가 지적인 파트너였던 사르트르와 왜 결별할 수밖에 없었는지, 사르트르의 선명한 사상과는 달리 카뮈는 왜 망설임을 택했는지, 그 망설임의 선택이 당시에 얼마나 비난과 잘못된 평가를 받았는지를 새롭게 따져보면서, 사상가로서의 카뮈를 복원하는 제법 긴 글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망설임의 윤리학’은 우유부단함이나 비겁함과는 다른,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탐구와 이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