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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31. 2020

2020 독서노트 : 신간 잡지 읽기

<창작과 비평>(188호) <녹색평론>(172호) 등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시간이 물리적인 운동이 아니고 관념이라는 겁니다. 동일한 노동과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면 한 달을 살아도 그저 하루의 시간을 산 거라는 생각이죠. 그렇게 보면 물리적 시간과 달리 노동자의 인생은 굉장히 짧고 무의미하게 탕진되는 거라는 생각입니다. 노동 시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시간이고 시간을 팔아 밥을 먹는다는 말은 정확한 말입니다. 시간이 곧 인생인데 우리가 죽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시간에 대한 생각이 절실했습니다.(창작과 비평, 188442)


중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존•생활’이다. 우리는 이 점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구제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스크도 손씻기도 아니다. 그리고 장기간의 고립생활은 면역력 약화의 원인이 된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이 첫째 조건은 타자들 – 사람을 포함한 뭇 중생들 – 과의 평화로운 공생의 삶이다. 그리고 공생을 위한 필수적인 덕목은 단순 소박한 형태의 삶을 적극 껴안으려는 의지(혹은 급진적 욕망)이다. 내 목소리부터 낮춰야 새들의 노래도, 벌레들의 소리도 들린다. 그래야만 풀들의 웃음과 울음도 들리고, 세상이 진실로 풍요로워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녹색평론, 172호 8쪽)


민주주의 어원에 들어 있는 ‘데모스’(demos)라는 말은 ‘집을 짓다’(demo)라는 말에서 왔다. 그 집은 마을이고 지구이며 우주다. 그 집을 함께 짓는 모든 존재가 데모스이다. 당연한 위기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면 , 이제 우리 공동의 집(commune)을 함께 짓는 일에는 시민이 아닌 존재들과, 인간이 아닌 동물-주체들이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만든 아테네의 데모스도 원래는 고귀한 자들로부터 ‘짐승 같은 것들’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동물의 정치는 정치를 고귀한 자들의 독점에서 민주주의로 탈환하는 정치의 시작이다. (문학3, 11호 29쪽)          


글쓰기 교실에서 한 학생의 문장실력이 – 어휘뿐만 아니라, 표현방식이 – 훌쩍 좋아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유를 살펴본 즉, 그 학생이 읽었던 책이 그 학생의 어휘와 사고구조, 문장실력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는 나는 페이스북에다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읽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당연히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동종업계의 맹약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언어를 집약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좋은 잡지를 읽으면 된다. 편식된 독서, 치우진 어휘, 단순한 사고방식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사저널>이라는 주간지를 통해 급변하는 시대의 언어를 습득한다. 하지만 주간지는 그 짧은 주기성 때문에 깊이를 보장할 수 없다. 이를 보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격월간지나 계간지를 읽는 방법이다. 2~3달에 한 번 나오는 잡지들은 긴급한 시대상을 잡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이와 넓이를 보장하는 전문성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마다 선택하는 잡지는 다를 것이다. 나는 격월간지 <녹색평론>과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선호한다. <녹색평론>은 1991년 창간되어 지금끼지 계속 나오는 생태주의적 잡지이고, <창작과 비평>은 1966년도에 창간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문사회과학 잡지이다. 이러한 잡지를 읽으면, 우리 시대의 주요쟁점을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 사회과학, 예술, 과학, 정치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독서경험을 압축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다. 아울러 신간에 대한 안목있는 소개도 되어 있어 구입할 책을 선정하기에도 유용하다.


이번에 나온 잡지들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코로나 19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성계의 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혼란된 관점들을 정리하고, 자신의 이해도를 점검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번에 나온 <창작과 비평>(188호)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백무산 시인의 신작시집에 대한 깊이 있는 대담이 실려 있어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이번 호는 “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한반도 평화의 길을 모색한 대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근대 한국어'를 주제로 나눈 심도 깊은 대화, 21대 총선 결과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등 현 시기의 첨예한 이슈를 탐구한다.” 잡지의 격조를 느끼고 싶은 독자에게 창비는 만족을 줄 것이다. (좋은 잡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녹색평론>(172호)는 “ 6·25와 우리 사회의 지난 70년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두루 돌아보는 ‘한국전쟁의 정신사’ 특집을 마련”했고, “코로나 비상사태가,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지구 생태계의 황폐화 그리고 인간성 및 인간관계가 망가지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문명적 차원의 ‘공생의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김종철 선생의 '책을 내면서'를 읽는 재미를 최고로 친다. 시대를 급진적으로 읽어내는 양심적 지식인의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추신> 창작과 비평을 읽으면서 <문학3>이라는 계간지를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특히 이번 ‘2020/#2’는 ‘동물의 자리에서 인간중심주의 다시 보기’라는 ‘주목’을 담고 있는데, 동물주의(animalism)적 관점에서 새롭게 시대상황을 진단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기획과 실용도도 매우 높아 토론용 교재로 사용하면 좋을 듯 하다. 이 잡지의 참신성은 각 원고마다 질의 응답이나 대담을 통해 글의 이해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기획이 느껴진다. 게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300쪽 가까이 되는 잡지가 정가 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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