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장하준 외《코로나 사피엔스》(인플루엔셜, 2020)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백신밖에 답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백신을 만들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린다면서요. 아마 실질적으로 2~3년 정도 걸리겠죠. 그런데 만일 앞으로 바이러스가 거의 매년 우리를 공격한다면, 백신은 늘 뒷북을 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1년 동안 몇만 명 죽고 난 뒤에야 백신이 개발되고 유통되는 셈이죠. 백신은 독성을 약화시켰거나 죽인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로 만들거나 병원체를 둘러싸고 있는 표면 단백질 혹은 독소를 추출해 만들잖아요? 이런 화학백신보다 더 좋은 백신이 있습니다. 행동백신과 생태백신입니다. (32~33쪽)
자본주의는 그냥 풀어놓으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이에요. 독일에서는 소위 ‘야수자본주의’라고 불러요. 야수가 된다는 거죠. 그게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이에요. 한국사회는 야수자본주의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활개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자들, 소위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는 자들이 너무나 과잉 대표되어 있는 게 한국 의회고요. 그래서 실업과 불평등이 이렇게 심한 겁니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실업, 불평등, 사망률, 산업재해율을 자랑하는 건, 바로 자본주의의 야수성이 한국사회에서 관철되고 있다는 뜻입니다.(143쪽)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최재천, 장하준, 최재붕,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6인의 석학과 진행한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대한 대담이 책으로 나왔다." 《코로나 사피엔스》(인플루엔셜, 2020)이다. 6명 모두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이 친숙성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담론이 대중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책은 라디오 방송에서 사회자와 대담한 내용과 더불어 못다 한 이야기들을 보강하여 싣고 있다. 시기성에 맞춘 출판물이다.
이 책의 장점은 다양한 관점과 영역에서 코로나 사태를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생태적 관점, 경제적 관점, 문명적 관점, 체제적 관점, 세계관적 관점, 심리학적 관점에서 코로나 이전과 현재, 미래를 예측하고, 성숙한 사회를 변화하기 위해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다. 자칫 전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 말이 어려워질 것 같으면, 사회자의 정리와 섬세한 질문으로 대담을 진행함으로 누구나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재미났던 부분은 각 대담자들이 사용하는 개념어들이었는데, 예를 들면 생태과학작 최재천의 경우에는 ‘행동백신’이나 ‘생태백신’이라는 말을 한다. 이는 우리가 코로나의 치료제로 기다리는 ‘화학적 백신’과는 다른 생물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번 코로나를 바라보게 하는 유용한 용어임과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침이 될만한 용어라 할 만하다. 최재붕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현대인을 ‘포노 사피엔스’라 칭하면서, 핸드폰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대인의 삶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살핀다. 이는 단순히 과학적 영역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술이 사회경제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하게 하는 재미난 용어이다. 독일에서 유학한 김누리는 ‘야수자본주의’라는 헬무드 총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자본의 ‘인간화’를 촉구한다. 심리학자 김경일은 사회적 ‘원트Want’와 개인적 ‘라이크Like’를 구분하면서 비교와 경쟁이 아닌 나만의 개인적인 ‘적정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대담 내용들은 유튜브를 통하여 방송분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책을 구입해야 하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하지만 방송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책은 고여있는 것이다. 흘러가는 물에는 자신을 비출 수 없지만, 고요하고 잔잔한 물에 자신을 비출 수 있는 것처럼, 유튜브와 책은 각기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방송을 다 들은 나도, 다시 책을 구입하고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매겨하며 새롭게 깨달은 바가 크다. SNS가 지배하는 사회지만, 종이책의 유용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숙고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책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드카버로 되어 있고, 시원한 편집에 읽기도 편한데 가격은 15,000원이니 큰 부담도 없다. 밥 한 번 덜 먹고, 커피 한 잔 덜 마시면 지성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랴!
<추신>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용어는 최재천의 이야기에 나온다. 그가 창작한 것인지, 아니면 남의 말을 인용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사피엔스’라는 유발 하라리의 역작이 이후의 많은 사피엔스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들뢰즈는 말한다. "개념의 창조, 그것이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