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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4. 2020

2020 독서노트 67 :최소확행을 찾아서

태수, 문정, 《1cm 다이빙》(피카, 2020)

처음에는 비슷하게 생각했다. 행복이란 건 비행기표를 끊고 바다에 놀려가 뛰어내리는 다이빙 같은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출금에 허덕이느라 쥐뿔도 없는 내겐 사치라 여겼고.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앞으로 더 없어질 거다. 시간도 그렇고, 여유도 그렇고, 용기는 말할 것도 없다. 행복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고, 용기도 없는 나는 ‘그냥 이런 게 인생입니다’ 라고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싫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게 7m, 5m, 아니 1m는커녕 동네 목욕탕에서 하는 1cm짜리 다이빙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13쪽)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 1,000% 달성,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 85,326(2020.6.24.기준) 에세이 종합 top100 17주, 리뷰 38개. 어쩌다 글은 썼지만 작가는 아닌 1호 태수(30살)와 글 쓰는 일로 먹고는 살지만 작가는 아닌 2호 문정(26살)이 ‘현실에서 딱 1cm 벗어나는 행복을 찾아, 일센티 다이빙’을 하겠다고 4개월 프로젝트로 만든 책이 《1cm 다이빙》(피카, 2020)이다. 후배 편집자가 선배네 출판사에서 나왔다며 주고 간 책. 심심풀이로 읽다가 다 읽게 되었다.


나는 서른 살에 뭘 꿈꾸며 살았을까? 나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행복했을까? 이미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되었는데, 나는 뭘 위해 사나? 행복한가? 뭐,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던 책이다. 이 책의 베스트셀러다. 나는 이 책이 나올 때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표지와 타이틀. 그러나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가장 큰 원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소확행’이란 말을 그것을 주창하던 세대가 구체적이고 솔직한 심정으로 잔잔하지만 설득력 있게 글을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기획력과 그 기획력을 우직하게 밀고 갔던 두 필자와 신생(?) 출판사의 승리였던 셈. 


만약에 이 책에 실린 글이 유명한 출판사로 넘어갔다면, 분명 이러한 꼴로 책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집이며, 글꼴이며, 구성이 너무도 엉성하고, 뭔가 더 필요할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이 팍팍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못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떤 책은 운명처럼 만들어지기도 한다. 


책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던져진 질문에 두 작가가 짧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센티 다이빙을 하기 전에 제자리를 뛰고, 손목을 털고, 숨 크게 들이마시는 준비단계와 같다. 스마트폰보다 재미난 거 찾아보기, 30초 안에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면, 남들은 해보지 못했을 것 같은 자신의 경험, 더 불행해질까 봐 하지 못한 이야기, 자신만의 영화 추천해보기, 자소서에는 쓰지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 자신이 겪은 나쁜 직장 상사나 동료 이야기, 의식주 다음으로 중요한 것, 삭제하고픈 기억, 비밀 이야기, 꿈이라는 게 있나, 소확행보다 더 작은 최소확행 이야기, 읽고 있는 책 이야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등등 작다면 정말 작지만, 소중하다면 정말 소중한 이야기들을 꺼내서 감성을 자극한다.


난 이런 책을 못 쓸 것이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행복이라도 챙기며 용기를 내어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많이 팔렸으니, 태수와 문정도 조금은 삶이 나아졌으려나? 두 작가의 행복을 기원한다.   

  

<추신> 이 책에는 태수와 문정 말고도 또 다른 필자가 숨어있다. 그 제3의 필자를 위해 책은 많은 분량을 빈칸으로 비워놓았다. 그 자리가 바로 당신의 자리이다. 빈칸을 채우며 당신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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