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22 : 하늘의 소리

구수한 맛 1 - 나는 나를 잃었다

by 김경윤

나는 나를 잃었다


남곽자기가 안석에 기대어 하늘을 보며 한숨을 짓고 있었는데, 우두커니 있는 모습이 그 자신조차도 잊은 듯했습니다. 안성자유가 그의 앞에서 시중을 들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선생님의 몸이 마른나무 같고, 마음이 꺼져버린 재 같아 보이십니다. 오늘 안석에 기대고 계신 모습이 전과 다르십니다.”

남곽자기가 말했습니다.

“훌륭하구나. 좋은 물음이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잃었다(今者吾喪我). 네가 그 모습을 보았구나. 그렇다면 너는 아느냐? 너는 사람들의 피리소리는 들었지만 땅의 피리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네가 땅의 피리소리는 들었다 하더라도 하늘의 피리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남곽자기가 대답했습니다.

“대지가 기운을 내뿜는 것을 바람이라 한다. 바람이 일지 않으면 그만이나, 일어났다 하면 모든 구멍이 성난 듯 울부짖는다. 너도 윙윙 부는 바람소리를 들어보았겠지? 산과 숲의 술렁임과 백 아름 되는 큰 나무의 구멍들이 귀 같고, 코 같고, 입 같고, 목이 긴 병 같고, 술잔 같고, 절구통 같고, 웅덩이 같은데, 물 흐르는 소리, 화살 나는 소리, 꾸짖는 소리, 들이쉬는 소리, 외치는 소리, 아우성 소리, 둔한 소리, 맑은 소리를 낸다. 앞의 것들이 우우 하면 뒤따르는 것들도 오오 하고 화답하는구나. 소슬바람에는 작은 소리로 답하고, 회오리바람에는 큰 소리로 답하는구나. 그러다 사나운 바람이 잦아들면 모든 구멍들이 텅 비게 되어 고요해진다. 너도 저 나무들이 크게 울다가 잦아지는 것을 보았겠지?”

자유가 말했습니다.

땅의 피리소리란 자연의 여러 구멍에서 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피리소리란 피리 구멍에서 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피리소리는 뭔지 모르겠습니다.”

남곽자기가 말했습니다.

“바람이 내는 소리는 제각기 다르지. 온갖 물건을 불어서 제각기 자기 소리를 내니 모두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나게 하는 것은 누구란 말이냐?”

- <제물론> 1


재미나긴 하지만 쉽지 않은 에피소드다. 등장인물은 두 명, 스승인 남곽자기와 제자인 안성자유. (이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는 장자의 단골메뉴로 <서무귀> 10편에서는 남백자기와 안성자로, <우언> 4편에서는 동곽자기와 안성자유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둘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알쏭달쏭하다. 평소와는 다른 스승의 모습을 관찰하고 말하는 제자. 그 제자의 관찰을 칭찬하면서 질문으로 답하는 스승. 그 질문에 다시 질문하는 제자. 한참 설명한 후 다시 질문하는 스승, 다시 묻는 제자. 다시 묻는 스승!


본문이 기니까, 간략하게 핵심만 다시 간추려 정리해보자.

안성자유 : 스승님 몸과 마음이 죽은 것 같습니다.

남곽자기 : 잘 보았다. 지금 나는 나를 잃었다(今者吾喪我)! 그런데 제자야, 너는 사람의 피리소리, 땅의 피리소리, 하늘의 피리소리를 들어보았느냐?

안성자유 : 무슨 말씀이신지……?

남곽자기 : 주변의 소리를 잘 들어보아라. 땅이 피리를 불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바람이 잦아지자 이내 소리도 사라졌구나.

안성자유 : 사람의 피리도, 땅의 피리도 바람이 불면 소리가 들렸다가, 바람이 멈추면 안 들리네요. 그런데 하늘의 피리소리는 모르겠습니다.

남곽자기 : 각기 다른 소리가 나게 하기도 하고 멈추게도 하는 자가 누구(무엇)이란 말이냐?


자, 나도 한 번 물어보자. 스승인 남곽자기가 몸이 고목(槁木)처럼 변하고 마음이 죽은 재(死灰) 변하여 자신을 잃어버린 것(吾喪我)과 하늘의 피리 소리(天籟)는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냐? 독자가 한 번 답해보라.

이에 대한 힌트를 줄 에피소드가 《육조단경》에 나오는 혜능의 깃발이야기다. 간추리면 이렇다.


육조선사 혜능의 등신불

오조선사 홍인으로부터 의발을 전수받았으나, 쫓기는 신세가 되어 오랫동안 신분을 드러내지 못했던 혜능

이 우연히 법성사 앞을 지나갈 때였다. 그때 절마당 당간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서 스님들이 두 편으로 갈려 논쟁을 벌이고 있다. 논쟁의 주제는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인가, 깃발 때문인가? 이른바 풍번문답(風幡問答)! 절간은 깃발파와 바람파로 나뉘어 한창 옥신각신하고 있었고, 이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혜능이 한 마디 거들었다.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닙니다. 그것은 스님들의 마음일 뿐입니다.(不是風動, 不是幡動, 人者心動)"

이 한마디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혜능의 그릇됨을 알아본 법성사 큰스님 인종은 그에게 수계를 내리고, 법성사를 맡겼다.


힌트가 되셨는지? 인생사를 살아가는데 항상 마음이 문제다. 바람이 불면 온갖 먼지가 일고, 파도가 치고, 온갖 것들이 소리를 내듯이, 마음이 한 번 소용돌이치면 판단이 생기고, 논쟁이 일어나고, 미움이 생기고, 원수가 생긴다. 이 보이지도 않는 마음 잡지 못해 늘 노심초사(勞心焦思)이고 안절부절한다. 마음이 생기면[成心] 그 생긴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마음을 비우면[虛心] 헛된 생각도 잦아든다. 시끄러운 소리도 가라앉고 침묵(沈默)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 침묵에 들어선 ‘나’는 이전의 시끄러웠던 ‘나’를 잃게 된다. 그때쯤 되면 하늘의 소리(침묵의 소리, Sound of silence)를 듣게 되려나.


<첨언> 최고의 가르침은 질문이다. 스승은 계속 묻는다. 질문은 이전의 대답을 무화시키고, 새롭게 출발하게 한다. 잘 질문하고, 계속 질문하는 것이 가르침과 배움이다. 질문을 가로막는 정답은 진리조차 가로막는다. 자, 그러면 다시 물어보자. 나의 풀이는 괜찮은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모르겠다는 답변도 참으로 괜찮은 답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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