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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ug 12. 2020

2020 독서노트 82 : 새로운 인문학을 기획한다

김재인,  《뉴노멀의 철학》(동아시아, 2020)

한편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조지 앤더스는 《왜 인문학적 감각인가 : 인공지능 시대, 세상은 오히려 단단한 인문학적 내공을 요구한다》에서 “교양 교육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비판적 사고를 할 능력을 키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자질이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직업적 기술로 평가되고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문학이 아무것도 훈련시키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준비시킨다고 강조한다. 원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쓸모없는’ 리버럴 아츠”가 실은 모든 것을 위한 내공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에서는 창의력, 인간 이해, 설득력, 협업, 포용력, 커뮤니케이션 등 ‘파워 스킬’을 가장 원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197쪽)     


오히려 우리는 인공지능이 삶과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Trustworthy Human-Centered AI) 건설을 견인해야 한다. 이것이 인문, 사회 영역에서만 할 수 있는 작업이며, 오늘날 인간, 사회 영역이 짊어진 시대적 과제다. 뉴리버럴아츠가 추구하는 유용성은 경제적 쓸모기 전에 삶의 쓸모다. 또한 이를 위해 전 세계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198쪽)     


들뢰즈 철학자 김재인이 이번에 내놓은 책은 《뉴노멀의 철학》(동아시아, 2020)이다. 김재인은 그 어렵다는 들뢰즈의 저서 《안티 오이디푸스》(민음사, 2014)와 《천 개의 고원》(새물결, 2001)을 번역한 실력자이자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2017)과 《생각의 싸움》(동아시아, 2019)를 써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철학서적을 내놓은 시대철학자이기도 하다. 나는 번역서를 내놓은 저자를 존경한다. 한 권의 책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실력뿐만 아니라, 그 번역을 둘러싸고 있는 사상사적, 시대적 배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쓴 책은 당연히도 나의 구입목록의 0순위에 해당한다.

이번에 나온 책은 코로나 19 사태를 맞이하여 한국의 학문적 풍토를 비판하고, 미래를 구상하기 위하여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열정적으로 피력하는 시대적 결과물이다. 빠른 시일에 시대적 요청에 답하느라 그랬는지, 이번의 책은 책의 구성력이나 설득력, 논증능력이 이전의 책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지면이 부족했거나, 자신의 열기를 낮추기를 의도적으로 수행하지 않은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날 것으로서의 그의 생각이 솔직하게 드러나기도 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책의 서문에서 드러나듯이 “인류는 코로나 19와 함께 포스트post-근대를 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이 그 전조라면, 코로나19는 근대의 끝을 알려주는 징조의 막내이자 마침표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이 삼각편대는 근대를 산산조각 낸 진정한 다이너마이트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이 유의미하게 제시된 건 40년이 조금 넘었지만,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상황과 맥락에서 진정 포스트-근대, 탈근대가 논의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근대와 적절하게 거리를 두면서 인류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라는 그의 문제의식이 이번 책의 저술 이유가 될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국가의 초월성에 기초하여 성립된 근대적 개념인 ‘정부(government)’는 인민의 내재적 의지에서 비롯한 탈근대적 개념인 ‘거버넌스(governance)’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진단과 함께 그는 윤리학(법과 자유), 철학과 과학, 인문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종국에는 인문×과학×예술의 모습을 띤 새로운 인문학(New Liberal Arts)을 주창한다. 이를 위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재편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문이과로 나누는 전통적인 중등교육의 편재는 문과를 폐지하면서 문이과가 통합되는 형태로의 재편을 요구한다. 고등교육 역시 이미 70% 가까이 대학에 진학하는 전세계 최고의 진학률을 보이고 있어, 소수자 선발과 학문의 계승이라는 과거의 대학목표와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으니, 시대적 요청에 맞추어 교육내용과 방식을 개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열변을 토한다.


나는 열기 높은 그의 주장 중에서 인문학이 과학과 만나야 한다는 점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 글쓰기를 일상화해야 한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미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며, 이는 K-방역과 전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이 입증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야 할 ‘패스트-팔로워(fast-follower)’에서 가장 먼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퍼스트-크리에이터(first-creater)’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입장에 놓여있다.


그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토를 어떠한 방식으로 걸어가면서 길을 낼 것인가는 비단 철학자 김재인만이 묻고 답해야 할 화두가 아니기에, 나는 김재인의 이번 책이 참고자료 삼아 나의 답변을 준비할 생각이다. 나의 답변도 책으로 나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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