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1 - 하늘이 그런 것입니다
공문헌(公文軒)이 우사(右師)를 만나보고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어쩌다 한 발이 잘리신 겁니까? 하늘이 그런 것입니까? 사람이 그런 것입니까?”
우사가 말했습니다.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이 한 일은 아닙니다. 하늘이 나를 만들 때 외발이 되도록 정한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은 두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외발도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의 한 짓이 아닙니다.
못 가에 사는 꿩은 열 걸음을 걸어야 한 번 쪼아 먹을 모이를 만나고, 백 걸음을 걸어야 한 번 마실 물을 만납니다. 그럼에도 새장 속에 갇혀 길러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왕 같이 대접받을지라도,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 <양생주> 4
공문헌과 우사가 실제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헌(軒)이라는 한자가 뚜껑이 있는 수레니까, 고위 관료를 나타낸다고 유추할 수 있다. 우사(右師)를 ‘오른쪽 장군’이라고 번역하면 우군(右軍)을 지휘하는 장군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서로 잘 나가던 고위 관료 중 한 명인 우사가 발이 잘린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오랜만에 만났겠지. 공문헌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
“아니, 장군. 어쩌다 이리되셨소?”
우사가 답했다. “하늘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天也, 非人也].” 하늘이 외발을 만들다니. 전쟁 통에 다리가 잘려 나갔을까? 군대를 잘못 이끌어 처벌을 받아 다리가 잘렸을까? 알쏭달쏭하다. 그런데 우사가 뒤에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꿩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여기서 힌트를 얻어야 할 듯.
꿩은 힘겹게 살아가지만, 새장에 갇혀 호의호식하며 지내지 않는다. 이유는 잘 먹기야 하겠지만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문 “神雖王, 不善也.”을 나는 “왕 같이 대접을 받을지라도,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로 새겼다. 왕 같이 살더라도 즐겁지 않다? 그래서 다리가 잘렸다? 그런데 그것을 하늘이 한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그렇지만 납득 가능한 논리로 설명해보자.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전쟁하는 시대’였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불구가 되어 돌아왔다. 장자가 살던 거리에도 그런 사람들이 넘쳐났을 것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승승장구하여 출세하였다. 우사가 장군의 지위까지 올랐다면 그는 전승 기록을 여러 차례 달성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다리를 잃었으니,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는 이제 더 이상 장군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상이군인(傷痍軍人)이 된 것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상이군인이 되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우사는 다르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살기는 힘들어졌지만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왕 같은 대접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대로 즐겁게 살겠단다.
가치의 역전이 벌어진다. 출세가 아니라 자유다. 갇혀 있는 왕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지내는 꿩이 되는 것이다. 열 걸음에 한 번 쪼고, 백 걸음에 한 모금 마셔도 그러한 삶을 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이 나에게 두 번째 인생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사의 말은 자조(自嘲)의 언어가 아니라, 자긍(自矜)의 언어다. 즐겁지 않은 [不善]의 삶에서 즐거운 [善]이 삶으로 옮겨진 것이다. 다리 잃은 장군의 어렵사리 깨달은 지혜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지혜에 도달하기도 한다. 하늘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