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노자 65 : 앎의 문제
교육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뎍경>
옛날 잘 가르치는 스승은
머리를 똑똑하게 만들지 않고
행동을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머리만 똑똑한 사람은
지식으로 도둑질하고
나라를 망치게 됩니다.
앎으로 다스리려하지 말고
하늘의 길을 따르게 하십시오.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조용한 행동들이 결국 큰 흐름이 됩니다.
그러니 지혜의 교사여,
앎이 없이 가르쳐 주십시오.
삶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지덕체(智德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시했는지 잘 알려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했습니다. 지식을 추구하느라, 양심은 고갈되고, 체력은 바닥이 났습니다. 그렇게 지식만 추구하며 진행해온 교육현장에서 무엇보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교사와 학생입니다. 학교가 교사와 학생을 망쳤습니다.
이제 그 지식마저도 교사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미 학생들은 교사의 손에서 벗어나 스마트폰의 세계로 이주하였습니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말초적이고, 즉각적이며, 현란한 지식이 학생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삶의 나침반이 되지 못하고, 유흥거리로 소일거리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잘났다는 사람, 똑똑하다는 사람들 나라와 기업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서 자신의 부를 증식시키고 권력을 유지하느라 나라꼴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식은 자기 증식의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좀비들에게 인공지능을 장착시킨 꼴입니다.
지식이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런 지식을 뭐라 말해야 합니까? 지식이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런 지식을 어디에다 써야 합니까? 지식이 지혜로 다듬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지식은 망국(亡國)의 도구입니다.
지혜의 교사여,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권력욕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지식들을 폐기하고, 삶을 살리는 지혜를 전수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생태적 행동, 이웃을 보살피는 따뜻한 마음, 서로를 주인으로 세우는 민주적인 훈련을 학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건국이래 100년 동안 망친 현장을, 100년을 생각하며 초석부터 다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