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노자 67 : 교사의 세 가지 보물
교육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교사의 삶이 영원한 것은
교사가 쓸모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큰 것은 쓸모 없어 보입니다.
쓸모가 있었다면 오래 전에 교사는 없어지고 말았을 겁니다.
교사에겐 세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사랑, 아낌, 나서지 않음입니다.
사랑하기에 용감해지고
아끼기에 널리 베풀고
나서지 않기에 크게 됩니다.
사랑 없는 용기,
아낌 없는 남용,
겸양 없는 나섬,
이는 학생을 죽이는 일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였습니다. 넘치도록 사고, 넘치도록 쓰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고 쓰는 것을 권장하다보니 안 사도 되는 것을 사고, 안 써도 되는 것을 썼습니다. 그 구매와 사용의 회전률이 높아지다보니 쓸 만한 데도 버리고, 새로운 것을 구매하여 써보는 얼리-어뎁터(Early-adapter)가 표준 모델이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낡으면, 조금이라도 유행이 지나간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낮은 사양이라면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부(富)는 나눔의 도구가 아니라 과시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더 비싼 곳,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더 맛있는 음식을 따라 시도때도 없이 유랑하며 사들이고 써재꼈습니다. 그리하여 온 국토를 쓰레기 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구매한 정도에 따라 VIP가 결정되고, 프리미엄이 붙었습니다. 호텔이나 백화점은 더 많이 더 잘 쓰는 사람을 위한 스페셜 공간을 마련하고 스페셜 시간 대에 스페셜한 혜택으로 그들의 욕망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언컨택트의 사회가 선포되자, 그들은 오히려 잘 되었다면, 자신들만의 공간이 확장되기를 바랐습니다. 전세계가 홍수로 난리가 났지만, 그들은 더욱 용기를 내어 땅값 집값을 올리느라 현수막을 내걸고 피켓을 들었습니다. 기한 다한 세입자들을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에게 정치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쓸모 없는 사람들은 진짜로 쓸모 없어져 죽음의 문턱을 기웃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황금으로 철면피를 도색하고, 자신들만의 천국을 만들려하고 있습니다.
아, 교육자여! 어쩌면 좋겠습니까? 소비 대신 아낌을 권장하고, 아껴 남은 것으로 돌봄으로 이끄는 삶의 새로운 행로가 개척될 수 있겠습니까? 더 벌어 더 쓰겠다는 용기를 돌려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겠다는 용기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랑의 윤리를 가슴에 새길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야 어찌되었든 나만 아니면 된다는 파렴치한 이기(利己)를 멈추고, 남들 봐서라도 이만하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겸양의 미덕을 가르치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죽은 것입니다.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무너져 결국 공생(共生)이 아니라 공망(共亡)하는 길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학생들을 죽여야 합니까? 살려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