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진정한 가르침은
알기 쉽고
하기 쉬워
누구나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알기 쉬운데 알지 못하고
하기 쉬운데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리석음이 넘쳐나니
알기 쉬운 것을 조롱하고
하기 쉬운 것을 업수이 여깁니다.
그래서 진정한 가르침이 귀해집니다.
진정한 교사여,
비루해진 삶이라도 보물을 버리지 마십시오.
비대면 시절이고 보니 유튜브가 유행입니다.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유튜브를 통해 배운다고 합니다. 미래의 직업으로 유튜버가 되겠다는 청소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장점이 있습니다. 엄청난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기술만 있으면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해설하거나, 길을 걷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같이 지내는 동물을 보여주거나, 요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콘텐츠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유튜버가 되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유튜버가 되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많은 유튜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자신의 동영상에 조회수를 올리기 위하여 수많은 시간을 보내며, 유튜브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좀 더 자극적인, 좀 더 선정적인, 좀 더 지나친 영상을 올려야 조회수가 올라간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합니다. 그런 지침에 윤리가 설 자리는 참으로 좁습니다.
게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은 그렇게 올라온 동영상들에 기초해서 유튜브 소비자들에게 동영상을 선별하여 노출시켜 줍니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조종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점점 유튜브에 빠져들게 됩니다. 점점 자극적인 것을 찾아다니며 한두 시간을 금세 보냅니다. 이런 증세가 바로 중독입니다.
중독의 자리에서 성찰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중독은 성찰없는 몰입입니다. 성찰은 자신을 회복시키지만, 중독은 자신을 파괴합니다. 성찰은 좋음과 나쁨에 대한 주체적 각성이지만, 중독은 외부적 정보에 대한 비주체적 환각입니다. 성찰은 일상적 자아에 대한 거리두기이지만, 중독은 일상적 자아에 대한 망각입니다. 성찰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만, 중독은 새로운 길을 파괴합니다. 지혜의 성찰은 현실세계로 돌아오지만, 유튜브 중독은 현실세계를 지우고 가상세계로 인도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아니 우리 모두가 중독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교사의 가르침은 점점 외면당하고, 그 자리를 유튜브가 차지하는 세상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함께 지혜를 모아, 이 엄청난 현실을 이야기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