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쓰기 62 :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고양신문 인터넷판 2020.9.4.

by 김경윤

둘째 아들이 현역으로 입대해 가족 전체가 논산까지 자가용으로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기가 뭐했는지, 아내는 슴슴한 국물의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다들 말없이 동의하고 평양냉면집으로. 냉면집은 한산했다. 코로나 사태가 빚어낸 또 다른 풍경이다. 냉면을 먹고 나오는 길에 주차장 한켠에 세워진 작은 오토바이를 보며 아내가 말한다. “이제는 지방으로 강의도 가지 않는데, 어차피 도서관과 서점만 왔다갔다할 거면 차는 집에 놔두고 이런 오토바이나 하나 사서 몰고 다니지?”

평소에 농담조로 ‘삼보승차(三步乘車)’를 주장했던 나는 잠시 흔들렸다. 코로나로 수입이 급감했는데, 자동차를 여전히 평소처럼 몰고 다니던 내 모습이 초라해졌다. 일단 비는 피하고 보자. “그럴까? 한 번 알아볼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큰아들이 싼 오토바이를 검색해서 알려주겠다며 엄마의 말에 힘을 실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이제는 빼도박도 못 하고 자동차를 포기해야하나? 사실 지금과 같은 경제적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동차는 나에게 사치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도서관에 돌아와 이 사태를 어떻게 넘어설까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길거리도 위험하다며 운동도 멈춘 상태라 점점 ‘확찐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참에 걸어다녀?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기왕에 자가용이 있는데, 오토바이를 또 사? 지금 경제사정에? 별의별 생각이 떠올랐다. 이럴 때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책이나 읽어야겠다며 책장을 훑었다. 그러다가, 아뿔싸, 이반 일리치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가 눈에 들어왔다. 신의 계시인가, 악마의 장난인가?


책의 원래 제목은 ‘에너지와 공정성’이다. 만약에 이런 제목이었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니. 이반 일리치는 이 책에서 에너지의 위기와 교통의 산업화, 수송산업의 근본적 독점, 가속의 비효율성을 이야기하며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인간의 이동능력에 대한 ‘근본적 독점’이며, 공정하지도 않은 에너지 낭비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그와는 달리 탈산업적 효율성을 갖춘 세계를 꿈꾸면서 자전거야말로 일상의 활동반경을 세 배로 늘리면서 자유와 공정성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는 사회는 정치적 선택과 문화에서도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유혹하고 있었다.

책을 읽다가 집에 있는 자전거가 떠올랐다. 집에는 아이들이 타고 다니다가 타이어가 펑크나서 보관소에 처박혀 있는 자전거가 한 대 있다. 타이어만 고치면 멀쩡한 자전거인데, 평소에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막내는 군대에 갔고, 큰아들은 직장이 서울이라 자전거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니 타이어를 고치고 조금 손만 보면 온전히 내것이 될 수 있는 자전거 한 대. 머릿속에 파란 신호등이 켜졌다.


평소에 운동도 하지 못하던 차에 자전거를 타고 다닐까 생각하니, 사뭇 뿌듯했다. 그래 나도 소싯적에는 자전거로 학교를 통학한 적이 있었지 생각하니 갑자기 젊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분명 이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면 아내는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늘그막에 철들었다면 눈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자전거 타기도 운동인데 살이 좀 빠지려나. 코로나로 위축되었던 마음은 조금은 풀린 듯했다. 그러면서 피식 웃었다. 자동차광(狂)은 아닐지라도 자동차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것 같았던 마음이 이리 쉽게 바뀌나. 작심삼일이라고 삼 일만 타고 다시 자동차키를 만지작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겠다는 이 마음에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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