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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Oct 27. 2020

2020 독서노트 95 : 요조의 떡볶이

요조, 《아무튼, 떡볶이》(위고, 2019)

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사십 년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안심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거나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겨져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백기녀와 신중택의 젊은 날 뜨거운 밤을 통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존재하게 되어버렸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62쪽)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고 나서, 책소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몇 편 골라봤다. 소설가 장강명과 가수 요조가 사회를 보면 진행하는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요조가 《아무튼, 떡볶이》라는 책을 썼다는 사실을 그들의 수다 속에서 알게 되었고, 가수인 줄만 알았던 요조가 책을? 하며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이미 책을 3권(공저 포함)이나 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지, 요조가 제주도에서 책방을 운영한다고 했으니, 책을 좋아했을 것이고, 책을 심하게(?) 좋아하다 보면 책을 쓸 가능성이 높기도 하지. 금세 수긍이 갔다.


아무튼, 《아무튼, OOO》 시리즈에서 나온 책은 이미 몇 권을 골라 읽었다. 김한민이 쓴 《아무튼, 비건》을 보며 채식주의자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되었고, 이지수가 쓴 《아무튼, 하루키》를 읽으며 우리나라에 하루키스트들이 많구나 느끼게 되었고,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를 읽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어느 책이든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무튼, 떡볶이》를 구입하여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지역서점에 전화를 넣어 주문했고, 받았고, 읽었다.

에세이를 좀처럼 읽지 않았던 독서버릇이 나이가 먹어서 바뀌었다. 에세이는 쉽게 쓸 수 있다는 선입견도 사라졌다. 오히려 쉬운 에세이를 쓰는 것이 어려운 책을 쓰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에세이를 써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최근 들어 내가 독서한 이력을 되새겨보니 에세이들이 목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태어났으니 떡볶이와는 뗄 수 없는 지역이고,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먹은 간식 1위가 떡볶이니까, 요조의 책을 읽으며 나의 떡볶이 추억도 떠올리는 1석2조의 효능감을 맛보겠구나 기대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요조의 책은 잔잔하고 찬찬하며 술술 읽혔다. 요조의 노래처럼 그렇게 글도 쓰는구나 생각했다. 잔잔한 노래를 쓰기가 댄스곡 쓰기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에세이는 쉽게 쓰인 것이 아닌 게 분명하다. 말을 빨리 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이 많은 편인데, 요조는 생각하며 글 쓰고, 여러 번 고쳐 쓴 것이 분명하다.

살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떡볶이집과 떡볶이 종류들이 요조의 지인들과 엮여서 소개되고 있었다. 음식은 음식만으로 소개되기가 참으로 힘들다. 그 음식을 같이 먹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음식 소개의 욕망은 한층 떨어질 것이다. 요조의 떡볶이 책은 떡볶이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존칭을 생략하고 괄호 속에 자신과의 관계를 적어 넣었다. 이 또한 재미난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백기녀(엄마), 신중택(아빠) 이렇게 써놓는 것이다. 절친인 김상희는 (친구)로 소개되기도 하다가, (원수)로 소개되기도 한다. 맥락에 따라 친구도, 원수도 되는 것이 절친이니 그럴 법도 하다. 요조의 떡볶이 책은 당근 요리나 음식이 주가 아니라 추억과 사람과 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책이다. 

요조는 주로 밖에서 먹었던 떡볶이만을 소개했지만, 내가 먹은 떡볶이 중 절반 이상은 집에서 만들어 먹은 것들이다. 지금도 주말에 출출한 점심이나 저녁은 떡볶이를 해 먹는다. 박주연(아내)이 만들어주는 떡볶이는 정말로 맛있다. 우리 집은 떡 반 어묵 반 정도의 비율로 푸짐하게 만들어 배 터지게 먹는다. 요조의 책을 다 읽으니 요조의 마지막 바람대로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즉석떡볶이를 구입하여 아쉬운 대로 먹었다. 집에 가서 제대로 만들어 먹어야겠다.     


<추신>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김민섭이 쓴 《아무튼, 망원동》과 김혼비가 쓴 《아무튼, 술》 추가 주문해두었다. 요즘 술을 먹으며 진행하는 유튜브를 망원동에서 녹화하는데, 묘하게 장소와 소재가 겹쳐서 급작스럽게 관심이 갔다. 이 책들은 나에게 무슨 재미를 선사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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