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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Oct 20. 2020

2020 독서노트 94 : 젊은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임유진,《디어 리더》(엑스북스, 2018)

진심을 담아라. 헌신하라. 안주하지 말아라. 산산조각 부서질 각오를 하라. 실패하라. 거절을 받아들여라. 무너져도 딛고 일어서라. 궁금해하라. 자기 몫의 세상을 품어라, 어둠 속에서 웅대한 뜻을 품어라. 너무 큰 위안을 주는 것을 경계하라. 희망과 믿음과 신념을 품었다 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 글을 쓰려고 쥔 펜을 신뢰하되, 수정용 펜을 잊지 말아라. 매 순간을 소중히 하라. 두려움이 생겨나 내버려 두라. 자신을 허락하라.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라. 바로잡기 위해 싸워라. 독창적인 유일무이한 언어를 가져라. 공포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라. 동시에 즐겨라. 가슴을 언어로 가득 채워라. 이것은 사랑과 존중을 담아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젊은 작가여, 쓰라. 

칼럼 매캔,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책의 79~80쪽에서 재인용)    

 

생전 처음으로 직장 다니는 아들에게 용돈 10만 원을 받았다. 원래 막내아들에게 돌아갈 용돈이, 막내는 군대를 갔고, 나는 거의 실업자 수준이라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원래는 매달 주겠다고 나에게 약속을 했지만, 아내의 적극적 만류로 인해, 이번 달만 받기로 했다. 공돈 10만 원이 생긴 것이다. 그런 이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술을 사먹기에는 아까웠다. 단번에 사라져 버리니까. 그래서 즐겨 피는 담배 한 보루를 일단 샀다. 4만 5천 원이 사라졌다. 나머지 5만 5천 원으로 뭘 한다? 뭘 하긴 책 사야지.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 남은 액수만큼 책을 샀다. 장기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와 강원국 백승권이 쓴 《글쓰기 바이블》 그리고 임유진이 쓴 《디어 리더》가 선택되었다. 이것으로 10만 원은 사라졌지만, 나에게는 담배 한 보루와 책 3권이 생겼다. 이 정도면 수지맞는 교환이다.


이 글은 용돈으로 구입한 3권의 책 중 임유진이 쓴 《디어 리더》(엑스북스, 2018)에 관한 글이다. 책과 만나는 운명은 가지각색이지만, 대부분은 읽고 있는 책이 다음 책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임유진의 책은 이전에 읽었던 이진경의 《사랑할 만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의 뒷날개에 소개된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뒷날개로 넘어가면 보통은 그 출판사의 연관 책들이 소개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디어 리더》는 소개된 3권에 책 중 마지막에 짤막한 문구와 함께 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문득, 세상 모든 것이 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달라지는 우리의 읽기를 위하여.” 퍽 매력적인 선전 문구였다. 이 미끼를 물기로 했다.

이 책은 편집자 임유진이 엑스북스의 블로그인 엑스플러스와 홈페이지에 실었던 글을 모은 것이다. 30년의 독자 경력과 10년의 편집자 경력을 밑천 삼아 글쓰기와 책 읽기에 관한 글을 묶은 것이니, 그의 독서이력과 편집 이력을 구경할 겸,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요즘 글쓰기와 책 쓰기에 관한 책을 의무적으로 구입하여 읽고 있는데, 대부분은 참고용이긴 하지만, 속마음에는 글 쓰고 책 만드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욕망이 작동한 것이다. 동종업종에 대한 응원이라고나 할까. 

200쪽이 살짝 넘는 이 책을 후딱 읽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찬찬히 읽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후딱 읽었다고 말하기에는 필자의 글쓰기가 진지했고, 찬찬히 읽었다기에는 글이 술술 넘어갔다. 마치 초코칩을 먹는 것처럼, 고소한 맛 중간중간에 매콤쌉싸름한 초코알이 박혀 있었다. 저자의 독서이력이 잘 드러나는 책은 어떤 책이든 흥미를 자아내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나는 지인 집에 놀러 가면 그 사람의 책장을 훑어보는 버릇이 있다. 그 사람이 읽은 책이 그 사람의 내면을 구성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치 임유진이라는 사람의 서재에 들어가 그 사람이 읽은 책 중 밑줄 친 부분을 읽은 듯한 느낌이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의 독서방법과 독서이력, 책 선정법과 이 책에 수록된 책들의 목록을 소개하고 있다.


임유진은 Dear reader는 Dear Writer라고 바꿔 읽어도 된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이 책은 책을 읽는 독자뿐 아니라, 책을 쓰고자 하는 작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특히 임유진의 독서법은 당의정이 첨가된 가벼운 방법이 아니라, 제법 무거운 정공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어 신뢰가 갔다. 이러한 편집자를 만나는 작가들은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아들이 준 용돈을 낭비한 것 같지 않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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