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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Nov 03. 2020

2020 독서노트 96 : 술로 빚은 글

김혼비, 《아무튼, 술》 (제철소, 2019)

(......) 오늘은 요가가 술을 이겼다. 무려 홍어회를 이겨내고 요가를 다녀온 것이다! 갑자기 강철 의지력이 생겨났을 리는 없고 어제 이미 질릴 정도로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역시 ‘오늘의 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건 그나마도 ‘어제 마신 술’밖에 없다.

앞으로도 퇴근길마다 뻗쳐오는 유혹을 이겨내고 술을 안 마시기 위해서라도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다.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도 마신다.(104쪽)     


망원동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술을 마시며 진행하는 <한 병 방송>을 녹화하고 나서 구입한 책이 김민섭의 《아무튼, 망원동》과 김혼비의 《아무튼, 술》이다. 이처럼 삶이 책 구입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어지간히 술을 마신 것 같은데, 코로나가 터지자 음주일과 음주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생각해보니, 일부러 술자리를 만들어가며 먹었던 것 같지는 않다. 살다 보니 잦은 술자리가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러한 술자리가 줄었을 뿐이다. 혼술은 거의 하지 않는 처지이고, 술보다는 안주를, 안주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술이 삶에서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었던 셈이다. 술 마시며 주량을 자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젊었을 때에는 음주량 측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마셨다. 빈 소주병을 세워 볼링핀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마신 날이 많았다.

주량은 상한가지만 주종은 매우 빈약하다. 주로 소주를 마셨다.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마시는 만큼 정직하고 적당하게 취기가 오르는 소주의 성품(?)이 맘에 들었다. 그에 비해 맥주는 운동을 마치고 땀을 식히느라 마시는 한 캔 정도가 적당했다. 그 정도를 넘어 맥주로만 이루어진 술자리는 잘 가지 않았다. 가더라도 소주를 시켜 먹었다. 어떠한 안주와도 어울리는 무난한 성격의 소주가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했다.

양주는 얻어먹을 때나 선물로 들어왔을 때 찔끔 마셨을 뿐, 적응하지 않았다. 양주를 사서 즐길 정도의 경제적 깜냥은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막걸리 역시 농장에서 일을 하는 짬짬이 한 잔 정도 마신 적이 있지만 막걸리로 달린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아, 나의 술탐험은 그야말로 협소하기 이를 데 없다. 요즘은 직접 술을 만들거나 온갖 것들을 담가 술을 만드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술은 마시는 것이지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소주 한 종으로 버텨온 인생이라 술의 맛을 진기하게 묘사하거나, 술맛으로 인생을 논하는 일은 나의 글쓰기의 품목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 이창희라고 전국을 누비며 술집을 탐방하는 후배를 만나게 되면서 술맛과 더불어 술맛만큼 맛깔나게 술을 묘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즐거웠다. 지금도 창희랑 함께라면 술 종류나 술과 어울리는 안주는 전적으로 그에게 맡기는 편이다. 술은 같이 먹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전혀 따른 강도와 밀도로 다가오는 법이라, 나는 술보다는 누구랑 같이 마시느냐를 더 따지는 편이다. 말이 통하고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어울러 맛있는 안주와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술자리는 천국에 값하는 행복이다.

아무튼, 대낮 맨정신에 김혼비의 《아무튼, 술》 (제철소, 2019)을 읽으며, ‘어랍쇼, 창희보다 더 맛깔나게 술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있었네’하며 감탄했다. 김혼비 덕에 여성의 술/글쓰기(?)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맨 정신에 읽어도 이렇게 취한 기분이 들면서 행복할 수 있구나. 도서관 앞 편의점에서 책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다가 옆에서 진지하게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조금은 민망하기도 했지만, 속으로 ‘너희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아?’하며 그들에게 미소로 응대했다.

책읽기란 그런 것이다. 술책을 읽을 때는 술을 함께 마시는 것 같이 취기가 오르고, 걷기책을 읽을 때는 산책을 하듯 상쾌한 기분이 들며, 이별책을 읽을 때는 저절로 슬퍼지고, 분노책을 읽을 때는 더불어 분기탱천해지는 것이다. 책읽기 만큼 지성과 성의 싱크로율이 높은 행위는 찾아보기 드물다. 드문 것은 귀한 것이다. 그러니 책읽기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드물고 귀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추신>

유튜브 동영상 <한병방송> 2화를 올립니다. 좋아요와 구독을 찍어주시면 성은이 망극하겠습니다.^^

https://youtu.be/i2LrtMuqX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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