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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Dec 08. 2020

2020 독서노트 101 : 중년의 위기

제임스 홀리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더퀘스트)

중간항로라는 의식적 경험에서는 지금껏 내면화시킨 경험의 총합과 진정한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주술적 사고에서 영웅적 사고로, 그리고 다시 인간적 사고로 변모할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의존성을 탈피하며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자아가 참패하고 나면 우리는 외부세계, 즉 경력, 애정관계, 권력, 만족의 원천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는 타인이 자신에게 줄 수 없는 것을 이유로 타인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여정이 우리의 책임이듯이, 타인의 가장 큰 책임은 그들의 여정을 이끄는 것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육체의 유한성과 더불어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허약함 역시 점점 잘 이해할 수 있다.(251쪽)     


 출간된 책의 제목은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이고, 원제가 ‘중간항로(Middle Passage)’인 이 책은 융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의 저작이다. 인간은 태어나 처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관계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으며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형성된 의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때가 1차 성인기(12세부터 40세까지)이다. 누구의 아들딸로, 누구의 엄마아빠로, 모회사의 구성원으로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사회화된다. 특정한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어릴 적 형성된 방어기제를 발달시키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문화의 특정한 가치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시기이다. 

그러다가 마흔이 될 즈음에 (요즘 나이로 환산하면 50~60세라고 해야할 듯 하다) 기존의 삶이나 가치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기존의 관계가 무너지며, 자신의 삶이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온다. 저자에 의하면 이때가 바로 ‘중간항로’를 여행해야할 시기이며, 자신의 어두움과 마주하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유한성을 느끼고,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추구하며, 자신 속에 숨어있는 ‘내면아이’를 깨워 삶의 온전함을 발견하는 시기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내면 여행이 쉬운 것은 아니다. 

이전의 것이 무너지는 마음의 지진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진정한 당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다”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신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저자는 그러나 용기를 내어 새로운 항로를 여행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책은 전문적인 심리학적 개념을 전달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융심리학이 도움이 되는지, 이전의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지, 새로운 ‘개성화’의 과정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것이 중년의 위기를 넘어가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가 오래 지속되면서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가족구성원의 마음을 뒤흔들고, 중년에 들어선 사람들의 우울증이 늘어가고 있는 이 시기에 이 책은 이모저모로 도움을 준다. 부모로 살아가는 어려움, 부부로 살아가는 어려움, 자식으로 살아가는 어려움들이 현실의 문제로 부각되면서 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도움을 얻었다. 무엇보다 진정한 치유는 자신 자신이 되는 것이며, 울고 있는 내 안의 그림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 삶을 점검하는 시금석이 되었다고 말해야겠다.

최근 들어 나의 관심사가 글쓰기로 집중되어 있는데, 글쓰기 역시 내가 외면해온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치유의 글쓰기’임을 느끼게 한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어, 그것을 바라보는 힘, 그리고 그 모순된 양가적 상태를 해석하여 온전한 나를 세울 수 있는 힘이 글쓰기를 통해서 얻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래된 지혜인 고전읽기와 더불어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학책들을 좀더 읽어보아야겠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위태할수록 자신을 돌보는 내면적 힘이 필요하다. 이책은 그러한 힘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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