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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Dec 16. 2020

2020 독서노트 102 : <천 개의 고원> 살아보기

고영주, 《청년, 천개의 고원을 만나다》(북드라망, 2020)

우연히 시작하게 된 공부. 글쓰기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확장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위계적인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글쓰기로 하나하나 깨고 싶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은 내가 나와 치르는 전투이다. 내가 고집하고 있는 관념들과의 싸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가치들을 부수고 새롭게 채우는 것 말이다. 그렇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나를 파괴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중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33~34쪽)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에서 주말에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글을 쓰다가, 이제는 단행본의 책인 《청년, 천개의 고원을 만나다》(북드라망, 2020)을 쓴 청년이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은 웬만한 지성들도 고개를 절래절래하게 만드는 철학서이다. 그런데 이 청년, 이 책을 공부하여 자신의 삶의 적용하고 심지어 멋진 글을 연재하더니, 그 글을 묶어 책으로 냈다. 


머리말에서 고영주(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12년에 감이당과 공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여러 세미나와 강의를 들었고, 최근 2년은 ‘감이당 일요일 대중지성’ 프로그램에서 여러 도반들과 함께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뜬금없이 내 인생에 공부라니! 솔직히 말해, 나는 공부와 영 거리가 멀었다. 학창 시절, 학교 공부와 담을 쌓은 것은 물론이고, 책은 읽기는커녕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학도 가지 않았고, 남들보다 일찍 사회에 뛰어들어 경제활동을 시작한 것이 자랑이라면 자랑이었다. 그러던 내가 어려운 고전을 읽고, 글을 쓰다니! 책의 ‘머리말’을 고민하는 이 순간 ‘사람 팔자(八字)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사람은 자기 체험만큼 읽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내 욕망의 배치와 내가 체험한 삶의 사건들을 『천 개의 고원』과 연결하여 진솔하고 담백하게 쓰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가 탄생했다.”


평범한 청년이 책을 쓰는 작가가 된 것은, 심지어 40대가 되면 온전히 책 읽고 글쓰며 사는 삶을 목표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끊임없이 책을 같이 읽고, 글을 쓰게 하고, 결국은 책을 쓰는 미션까지 준 공부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고미숙이 만든 ‘감이당’과 같은 공부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함께 내는 일을 미약하게나마 진행하고 있다. 내가 이번에 낸 책 《책 쓰는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도 이 공부공동체를 확장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공부하고 책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영주가 쓴 책은 나에게도 자극을 주었지만, 나와 함께 공부하는 청년들에게도 꼭 읽히고 싶은 책이다. “이봐, 이 청년도 이렇게 책을 썼잖아. 너희들도 책을 쓸 수 있다니까.” 이렇게 말하며 그들에게 던져주고픈 책이다.  


고영주의 책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의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은 그 어렵디 어려운 철학서에 나오는 핵심 개념들을 자신의 삶과 연관시키고, 적용하여, 자신의 삶을 진단하고,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는 실천서에 가깝다. 철학책으로 강의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철학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철학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적용되지 않는 철학은 그저 지적인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철학책은 ‘자기계발서’이다.”라고 평소에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리좀’, ‘다양체’, ‘언어’, ‘포획과 분절’, ‘기관 없는 몸체’, ‘기호체계’, ‘얼굴성’, ‘생성’, ‘리토르넬로’,‘전쟁기계’, ‘되기’ 등의 철학적 – 생소한 - 개념들을 글쓰기, 아버지, 연애, 아파트, 다이어트, 보험, 성형, 자기구원, 세월호, 술, 여행, 성숙 등의 일상적인 소재와 연결하며 매끄럽게 글을 써내고 있다. 이러한 글쓰기는 겉만 핥고 지나가는 독서로는 불가능하다. 읽고 생각하고 적용하며 끊임없는 반복과 수련, 차이나는 실천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써낸 청년 고영주에게 박수를 보냄과 동시에, 그와 함께 공부를 함께한 고미숙과 감이당(http://www.gamidang.com/)에 큰 환호를 보낸다. 앞으로 고영주 작가는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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