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묻고 내가 답하는 인문학 Q&A
만약에 글쓰기를 의무로 삼았다면 나는 아마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 의무는 아무리 멋지게 포장해도 수행하기 힘든 거거든요. 제가 책을 이미 30권 가까이 책을 썼는데요. 만약에 의무로 책을 썼다면 아마 10권은커녕 5권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 물론 출판사랑 계약을 하면 일종의 의무가 생깁니다. 그러나 의무라 할지라도 내가 쓰고 싶은 것을 계약했기에 의무감이 갖는 강제성이 줄어듭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요. 아이고 좋아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돈을 받고 쓰니 이 아니 기쁜가? 심지어 다 쓴 후에는 책으로 내준다니 금상첨화로다. 더 나아가 책이 잘 팔리면 추가로 돈이 들어오니 만세, 만만세로다. 그렇게 생각하며 글을 쓰면 의무감이 많이 줄어듭니다. 즐겁게 쓰는 거지요.
물론 저에게도 실패한 글쓰기가 있습니다. 제가 제안한 글쓰기가 아니라 출판사에서 제안한 글쓰기의 경우에는 실패하여 도중에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막상 계약을 맺었지만, 쓰려고 하니 내 속에 그런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 원초적 욕망이 없음을 발견했을 때, 쓰려고 해도 써지지 않더라구요. 의무감이 지배하는 글쓰기였지요. 결국 포기하고 계약금을 돌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무감으로 쓰면 안 됩니다. 숙제로 글을 쓰면 잘 써도 힘들어요. 일차적으로는 내가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흥미(興味)와 재미가 중요해요. 즐거움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저는 흥미있는 주제를 재미로 글을 씁니다. 역기서 자발성과 창조성이 생기는 거지요. 흥미가 있으니 시키지 않아도 쓰게 되고, 재미가 있으나 장난하듯이 이렇게 저렇게 써보는 겁니다. 이처럼 이렇게 저렇게 꼼지락꼼지락하는 것을 ‘창조’라고 합니다. ‘창조’는 흥미있는 장난에서 시작하는 거거든요.
재미를 기초로 한 장난은 실패를 용인합니다. 아니 실패가 없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끙끙대면서 만들어지는 것 그게 작품입니다. 단번에 척 잘 되는 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도전의식이 사라지지요. 흥미있게 도전하는 것이 어려울수록 재밌어요. 너무 쉬우면 재미없지요. 그래서 글쓰기도 너무 쉽게 쓰여지면 재미가 쉬 사라집니다. 지속적으로 재밌으려면 쓰고자 하는 것이 조금 어려워야 합니다. 내가 고전적 글쓰기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만약에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재미있어 한다면 ‘의미(意味)’가 생깁니다. 흥미가 있어 재미를 추구하다보면 의미가 생기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요. 게다가 흥미와 의미의 한자어를 살펴보니 둘 다 맛 미(味)자가 들어가 있어요. (재미는 한자가 아니더라구요.) 흥이 나는데, 뜻도 있는 맛! 그러니까 글을 쓰는 것은 흥미와 의미를 추구하면 말의 요리사가 되는 거지요. 내 글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한테는 큰 의미가 있거든요. 나만 재밌으면 안 되니까.
어쨌든 저는 글쓰기가 재밌어요. 흥미있는 것을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더하기 내 글을 읽으시는 분도 재밌어하면 그야말로 할렐루야지요. 서로 재밌는 것을 주고받는 게 바로 사랑입니다. 근사하지요. 재미를 서로 나누다보면 사랑하게 되요.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와 글읽기는 사랑입니다. 그럴려면 나만 글을 쓰지 않고 상대방도 글을 쓰면 좋겠지요. 일방적 사랑은 재미없으니까요. 독자 여러분들이 글을 읽고 쓰는 그날까지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