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 <예수, 신의 아들이 되다> (탐, 2020)
크리스마스 시즌이네요. 기독교는 저에게 배경과 같습니다. 제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성장해서는 교회의 보수성에 신물이 나면서도, 예수의 매력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지요. 청년시기에는 예수의 혁명성에 관심이 갖고, 중년이 되어서는 이 젊은 청년의 도저한 사랑에 감탄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그러하겠지만 예수는 삶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가기 싫지만 예수는 좋아하는 '가나안 교인'들이 많습니다. 제가 쓴 29권의 책 중에서도 예수를 다루는 책이 3권이나 되네요. 그중에서 올해 초에 나왔지만 코로나로 빛을 보지 못한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예수, 신의 아들이 되다>인데요. 그 중에 서문에 해당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복된 크리스마스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1.
기원전 1세기 로마 식민지인 이스라엘의 북부 농촌지역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살았기에 그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병들었다고 손가락질 당하고, 무식하다고 무시당하고, 가난하다고 외면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은 죄가 아니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병든 사람은 고쳐지고, 가난한 사람도 배부르게 되고, 무식한 사람도 행복하게 되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개인의 성공이나 행복추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되는 세상을 원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처지와 관계없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며, 가장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청년의 하느님은 인간을 벌주는 엄격한 신이 아니라 아무리 잘못해도 용서하주고 품에 안아주는 자상한 신이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 굴종하거나, 부유한 자에게 굽신대는 세상이 아니라, 병들고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그들이 서로 돕고 사랑하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 확신했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잔치하듯이 사는 세상을 그 청년은 ‘하느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먼 미래나 죽은 이후에 경험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매일 매일 경험하는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서로 돕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청년, 그러한 아름다운 생각을 주변에 알렸습니다. 주변에 그 청년을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서로 나눴고, 무식했지만 당당했습니다. 그 청년이 이끄는 사랑과 나눔의 잔치 공동체는 점점 영향력을 키워갔습니다.
사람들이 그 청년을 점점 따르자, 권력자는 권력이 사라진다고 걱정했고, 지식인들은 자신의 지식이 소용없어지는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 청년을 따르는 사람들은 칼을 들지 않았지만 점점더 강력해졌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무력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함께 나누고 보살피는 사랑의 힘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은 그 청년을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청년을 없애지 않으면 사회가 더욱 위험해질 것이라고, 자신들이 세워놓은 질서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대에 가장 강력했던 로마권력과 그들의 협력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던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권력을 한 마음 한 뜻으로 그 청년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청년을 체포하여 당시에 가장 강력한 사형제도인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그렇게 그 청년은 30대 중반에 나이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청년의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2.
하지만 그 청년이 이끌었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아도 죽은 것과 같지만, 어떤 사람은 죽어도 살아있는 것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삶이 그러하듯 어떤 사람은 죽은 후에 더욱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위대함을 확장하기도 합니다. 예수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뿔뿔이 흩어졌던 예수의 제자들은 다시 모여 예수와 함께 했던 사랑과 나눔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탄압이 거세게 몰아쳐도 굴하지 않고 더욱 사랑과 나눔의 원을 넓혀갔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창대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기독교를 창시하고 세상으로 펴져나갔습니다. 기독교는 이제 전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3.
이 소설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고 죽기 전 일주일 동안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애를 다룬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을 기초로 하여 사건의 흐름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중심화자를 예수의 남성 12제자로 잡은 것이 아니라 예수의 유일한 여제자인 마라아로 잡았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중 마리아는 가장 헌신적인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유일한 제자이기도 합니다. 예수가 삼 일만에 부활했을 때 그 부활의 현장에 가장 먼저 있었던 제자도 마리아입니다.
그런데도 남성중심적으로 쓰여졌던 당대의 전통은 마리아의 존재를 아주 미약하게 다루거나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넘고 싶었습니다. 마리아의 온전한 위치를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남녀평등이 보편적 가치가 된 오늘날에 맞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은 마리아의 관점에서 본 예수의 이야기입니다.
4.
탐철학소설 시리즈는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를 다룬 책이 이미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을 마지막으로 4대 성인과 관련된 책이 완간된 셈입니다. 참으로 영광된 순간입니다. 이 책뿐만 아니라 4대성인과 관련된 다른 탐철학소설도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소설이 나오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절기를 수난절과 부활절이라 부릅니다. 비단 예수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네의 삶 역시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배움과 노동과 삶의 현장에서 힘든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충분히 예수의 생애는 공감하리라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처음으로 기독교를 알게 해준 어머니와 지금도 사랑과 나눔의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 매번 느끼게 해주는 동료들에게 이 소박한 책을 내밉니다. 항상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2020년 수난과 부활의 시기에
김경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