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 맛 6 - 제관과 돼지 이야기
제사를 관장하는 관리가 예복을 차려 입고 돼지우리로 가서는 돼지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죽음을 싫어하느냐? 내가 석 달 동안 너를 잘 기를 것이다. 그후에 나는 열흘 동안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고, 사흘 동안 금기를 지기며, 흰 띠풀을 깔고 아름답게 장식한 쟁반 위에 너의 어깨와 엉덩이 살을 요리하여 올려놓을 것이다. 그러면 너도 좋지 않겠느냐?”
돼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겨나 술지게미를 먹으면서 살더라도 그냥 돼지우리 속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살아서는 가마를 타고 높은 벼슬자리에 있다가, 죽어서는 상여 위 아름다운 관 속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돼지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편안한 삶을 부정하면서도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편안한 삶을 취하고 있으니, 대체 왜 그런 것입니까?
<달생> 6
잘 살고 잘 죽는 것은 무엇일까? 한 번을 살아도 폼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한 번을 죽어도 성대하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 인간은 삶 그 자체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장식하는 많은 것에 현혹되어 살고 있다. 미래의 소망을 바라며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더 나은 삶을 바라며 현재의 고통을 감내한다. 어차피 유한한 생명이기에 죽는 것이 삶이거늘, 현재의 삶을 유보한 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까?
오늘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일이 올까? 하루하루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지금의 행복을 유보한 채, 나중에 맞이하려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 누구나 잘 살기를 바라지만, 정작 잘 사는 방법은 잘 모르고 살아간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정작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아닐까? 삶의 충만함이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석 달 후에 죽음의 희생제물이 될 것을 알기에 돼지는 현재의 삶의 지속을 선택한다. 하지만 인간은 편안한 미래를 기대하며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려 한다. 인간의 욕망이란 대체 무엇일까?
인간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노예의 삶을 선택한다.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의 대부분을 남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남의 말에 복종하면서, 남의 유혹에 현혹되어 낭비하고 있다. 생애 대부분을 그렇게 보내고나서 삶의 끄트머리에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겠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음미하는 삶’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다. 권력이나 명예나 부의 축적에 정신을 쏟는 탐욕적 인간이 아니라, 가난한 삶 속에서도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적 인간이 되고자 했다. 적어도 돼지보다는 나은 삶을 생각한 것이다. 적어도 돼지보다 못한 삶을 선택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