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47 : 새를 기르는 법

감칠 맛 5 - 종묘에 사는 새

by 김경윤

옛날에 어떤 새가 노나라 교외에 와서 내려앉았습니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맞이하여 종묘로 불러들여 잔치를 베풀고, 순임금의 음악인 구소를 연주하고,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주었습니다. 새는 눈을 멍하니 뜨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 잔의 술도 마시지 못한 채 사흘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임금이 자기가 사는 법으로 새를 양육했지, 새가 사는 법으로 새를 양육하지 않은 것입니다. 새가 사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마땅히 그가 살던 곳에 살게 하고, 호숫가에 노닐게 하며, 강이나 호수에서 헤엄치게 하고, 미꾸라지나 송사리를 잡아먹게 하며, 같은 새들과 줄지어 날아가 내려앉고 멋대로 유유히 지내게 해야 합니다. 새들은 사람의 말조차 듣기 싫어하는데, 어찌 시끄러운 음악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좋아하는 함지나 구소의 음악을 동정의 들판에서 연주한다면, 새들은 그 소리를 듣고 날아가 버리고, 짐승들은 그 소리를 듣고 달아나 버리고, 물고기들은 그 소리를 듣고 깊숙이 물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사람들만이 그것을 들으면 흥이 나서 서로 모여들어 둘러싸고 구경을 하겠지요.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지만 사람은 물속에 들어가면 죽어버리겠지요. 물고기와 사람은 다르니까요. 그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서로 다르겠지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옛날 성인들은 똑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같은 일을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지락> 6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들에게 해주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남들에게 시키지말라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의 입장은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이러한 입장은 ‘나=남’이라는 ‘동일자(同一者)’의 시선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노나라 임금이 신기한 새를 맞이하여 자신의 좋아하는 장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는 것은 선의에 의한 것일 테다. 상대방에게 최고의 것을 대접하려 했다는 점에서 노나라 임금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새는 음악도 싫고 음식도 싫어서 슬피 울다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 최선의 대접이 최악의 결과를 맞은 것이다.

장자는 말한다. “자기가 사는 법으로 상대방을 대접하지 말라.” 임금이 사는 법과 새가 사는 법은 다르다. 이 다름을 알지 못하면 선의는 결과적으로 악의가 될 수 있다. 장자는 나와 남이 같다는 동일자적 세계관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나와 남은 다르다는 타자의 윤리학을 정초한다.

사랑의 폭력은 대부분 타자의 윤리학이 배제된 곳에서 배태된다. 학부모와 자식, 선생과 학생, 연인들 사이의 폭력은 ‘사랑의 이름으로’ 버젓이 행사된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다, 너도 좋으면서 괜히 그런다, 사랑해서 그런 거 몰라 등의 언어는 사랑과 배려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을 가장한 폭력의 언어이다. 약자들은 그러한 폭력을 거부하지도 못하고, 영혼이 망가져 간다. 나중에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나는 너와 다르다. 자식은 부모와 다르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 있다. 내 테두리에 가둬놓고, 내가 원하는 대로 대접하지 말자. 상대방에게 물어보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알려하자.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자. 그러면 최소한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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