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거가 노자를 만나러 남쪽 패 지방으로 가고 있었는데, 진나라 일대를 유람하던 노자를 양나라 교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노자는 길을 가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처음에 너를 가르칠만하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보니 안 되겠구나.”
양자거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노자에게 세숫대야와 양치질 물과 수건과 빗을 올리고, 방 밖에서 신을 벗어놓고 무릎으로 기어들어가 노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여쭙고자 하였으나, 곁을 주시지 않고 걷기만 하셔서 차마 여쭙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한가하신 듯하니 그 까닭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노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네 모습을 보거라. 눈을 치켜 부릅뜨고 오만한 모습이구나. 그러니 누가 너와 함께하려 하겠느냐. 정말 깨끗한 사람은 오히려 때 묻은 듯 보이고, 덕이 충만한 사람은 오히려 덕이 조금 부족한 듯 보이는 법이다.”
이 말에 양자거는 낯빛을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가르침대로 몸가짐을 조심하겠습니다.”
양자거가 처음에 숙소에 왔을 때는 손님들이 모두 나와 그를 맞이했고, 주인은 방석을 날라왔고, 그 아내는 수건과 빗을 갖다놓고, 다른 손님들은 그를 보면 자리를 피해주고, 난롯가에 있던 사람들은 따뜻한 자리를 양보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고 나서는 숙소 사람들과 자리를 다툴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우언> 6
계층과 신분이 분명히 나눠져 있는 사회에서는 그 신분에 따라 대우를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지금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지만, 손님이 지불한 금액에 따라 처우와 대접이 달라진다. 돈이 신분인 셈. “손님은 왕이다”라는 표어는 대접하는 사람의 마음이어야지, 대접받는 사람이 주장하면 촌스럽고 한심해진다. 그런데도 돈 몇 푼 안 내면서 주인행세하고 친절을 강요하고 불만에는 갑질을 한다.
돈 있고 권세 있는 인간일수록 이런 인간말종들이 많다. 땅콩 안 까줬다고 비행기를 돌리는 짐승 같은 종자도 있다. 학식 있고 교양있다는 사람이라고 다를 것 없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대접이 소홀하면 금세 얼굴빛이 변하고 태도가 뻣뻣해진다. 나이가 먹을수록 이런 증세는 심각해진다. 경로사상은 젊은이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노인들이 강변할 일이 아니다.
당연히 대접받아야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친절한 모습은 불편한 마음을 담고 있을 수 있다. 고객센터에서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 말할 때, 그 마음의 수고로움을 읽어야 한다. 감정노동은 육체노동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내가 편하려면 누군가는 불편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인간사의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만 골라먹으면 분명 누구는 좋지 않을 것을 먹을 수밖에 없다. 내가 따뜻하면 누군가는 추워야 한다. 내가 많이 가지려면 누군가는 빼앗겨야 한다. 내가 많이 떠들면 누군가는 불편하게 침묵해야 한다. 내가 웃을 때 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만 좋으면 그만인 세상은 없다. 내가 좋다면 누군가는 안 좋게 된다.
성장은 더 편해지고 더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더 불편해지고 더 대접하는 것이다. 내가 불편함을 감수함으로 남을 편하게 만드는 것, 내가 더 움직여서 남은 덜 움직이게 하는 것,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을 책임져야할 것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치다 타츠루가 말했듯,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깨지 않은 유리조각을 아이들이 다칠까봐 말없이 줍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자의 맛> 연재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것 고맙습니다. <장자의 맛>은 올해 안에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어서 코로나가 끝나고 평안한 세상이 오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