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Mar 13. 2020

2020 독서노트 : 코로나19

고미숙, <위생의 시대 : 병리학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북드라망)

  

“병리학이 도래하면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는 견고한 장벽이 세워졌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둘러친 방어벽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그 안에 가두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장벽 안에 갇혀서 사람들은 자연과의 거리, 타인과의 거리, 연인과의 거리가 세련된 도시인의 삶이라고 자명하게 받아들인다. 길거리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인간 사이에도 서로 ‘지지고 볶는’ 관계는 허용되지 않는다. 두렵기 때문이다. 고독과 우울이 근대인의 질병이 되는 건 그런 점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이러다 보니,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 아니라, 덜 불행해지고 병에 덜 걸리는 게 사람들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고작 덜 불행해지기 위해 살다니! 이보다 더 초라할 순 없다!” (95쪽)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의 대처하는 개인적 방식은 손씻기, 마스크하기,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확진자와 그 사람의 동선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일주일에 하루만 살 수 있다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우체국이나 약국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 이대로 좋은 것인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인가? 

코로나19 사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중 마지막 권 《위생의 시대:병리학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북드라망, 2014)이다. 이 책은 ‘양생에서 위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우리나라 계몽기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생활과 사유가 어떻게 서구적인 삶의 방식으로 무비판적으로 바뀌었는지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대중목욕탕과 병원, 교회의 3위 일체가 우리 몸과 마음을 어떻게 관리의 대상의 바꾸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근대적 ‘위생권력’과 ‘생체권력’이 우리의 삶을 압도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러한 위생관과 신체관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고미숙은 박지원의 저술과 허준의 동의보감, 푸코의 저술에 나오는 양생술과 자기관리의 기법을 소개한다. 이는 바이러스를 적으로 여기고 제거하려는 근대적 시선과는 다른 대안적 관점과 삶이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데 적절히 이용된다.

“모든 질병을 박멸하는 유토피아적 염원이 아니라, ‘질병과 공존하는 삶’이라는 새로운 관계의 모색”하려는 관점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질병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어떤 신비한 블랙박스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기생(奇生)과 질병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실 어떤 면에서는 삶의 일부로서 필요한 것이다. 그것들은 대초의 가장 단순한 유기체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에 근본적인 것이다.” - 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


사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의 원인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잘 먹고, 푹 쉬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효과 큰 처방책이다. 우리는 그와는 정반대로 지나치게 먹고, 쉬지 못하고, 괴롭게 살아왔다. 이번 기회에 문명 전체의 거대한 반성과 전환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추신> 이 책의 부록으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대한 인문학적 분석이 소개된다. 꼭 한 번 영화도 보시고 글도 읽어보시길.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위생권력’의 실체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와 글은 보기 힘들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 독서노트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