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살아온 세월만큼 겸손해져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꼰대가 되어간다. 꼰대란 무엇인가? 남들에게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겪거나 생각한 협소한 경험치를 광대하게 넓혀 맥락없이 남들에게 던지는 행위는 폭력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폭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함정이다. 꼰대의 늪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꼰대짓에 재미를 들리면 자신이 꼰대라는 자각도 서서히 사라져간다. 이 정도면 불치병이라 할 수 있다.
세련된 꼰대들도 있다. ‘~해라’는 낯뜨거운 명령어를 살짝 ‘~하자’는 동반형으로 바꾸어 그 예각을 무디게 하거나,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슬쩍 자신의 생각을 얹는 방식도 있다. 또는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면서 ‘아님 말구’식으로 책임을 약화시키는 방식도 있다. 논설이나 사설 등 주장하는 글쓰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꼰대짓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꼰대짓의 한도를 정하는 것이다. 한도는 양과 질의 차원이 있다. 양(量)의 차원에서는 살짝만 꼰대짓을 하는 것이다. 마치 뜨거운 라면냄비를 맨손으로 옮기는 것 마냥 살짝! 꼰대짓을 오래하면 자신도 데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짝만 하는 것이다. 한 문장이나 두 문장 정도. 그것도 소리를 낮추어서! 질(質)의 차원에서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싸잡아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양시론이나 양비론을 피하면서, 구체적인 대상에게 구체적으로!
예전에 글쓰기를 할 때에는 이왕에 뽑은 칼, 뭐라도 베겠다며 조자룡이 헌창 쓰듯 마구 휘둘렀던 적이 있다. 효과는 어땠을까? 상대방은 멀쩡하고 나만 만신창이가 되어 피를 흘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리고 아무 칼이나 뽑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화들짝 놀라 칼을 도로 칼집에 넣으려고 노력한다. 칼은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게 좋다. 연필을 깎을 때는 연필칼을, 과일을 깎을 때는 과도를 사용하듯. 말(글)이란 무기를 들 때에는 무엇을 하려고 그 무기를 꺼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노자는 말한다. “칼을 오래 쓰려면 그 날을 무디게 만들어놔야 한다고.” 내 칼은 너무 날카롭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