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자격은 뭘까요? 1차적으로는 글로 뭔가를 지어낼[作, write] 줄 아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면 무언가를 쓸 줄 알면 다 작가일까요? 고개가 가우뚱하지요. 우리는 일기를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말하지는 않아요. 편지를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말하지도 않지요.
일반적으로 글쓰는 사람과 작가의 가장 큰 차이는 독자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물론 독자는 친구나, 지인이나 가족처럼 제한적인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제한적인 사람만 읽는다면 작가로는 부족해요. 작가는 항상 ‘미지의 독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 글을 읽어도 된다고 생각해야 작가가 됩니다. 이 ‘미지의 독자’로 인해 긴장감이 생기지요. 나는 독자를 모르는데 독자는 글로나마 나를 알게 된다는 사실은 부정적으로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긍정적으로는 설렘이나 기대로 다가오기도 하지요.
독자에게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면 글을 쓸 수 없게 되겠지요. 적어도 미지의 독자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가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됩니다. 그래서 작가는 미지의 독자에게 자신을 선보이기 위해 이것저것을 준비합니다. 마치 미지의 미팅 상대방을 만나기 위해 이러저러한 옷을 입어보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한껏 꾸미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꾸밈이라는 것이 2개의 차원이 있어요. 겉모양을 꾸미는 것을 외적 차원이라고 하고, 속모양을 꾸미는 것을 내적 차원이라고 하지요. 작가에게 외적 차원은 글의 구성이나 문체가 되겠네요. 읽기 편한 글, 잘 구성된 글,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문장은 작가의 글쓰기를 한껏 돋보이게 하지요. 문법에 맞지 않아 뭔말인지 모르겠는 문장,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 표현된 문장, 앞 말과 뒷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글은 작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지요. 그래서 작가는 문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을 부단히 해야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차원이 바로 내적 차원입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는 작가의 가치관과 인생관에서 나오는데, 이 작가의 가치관과 인생관에서 나오는 태도야말로 작가가 항상 수시로 살펴보고 가꿔나가야할 평생의 과제입니다. 화장은 단순간에 할 수 있지만, 인격은 단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신이 독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독자를 전지적 자리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태도는 결코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작가와 독자는 평등의 지평에서 만나는 사이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아껴야 좋은 관계가 유지됩니다. 작가가 독자의 태도를 결정할 수는 없으니, 작가는 자신의 태도만 결정하면 됩니다. 독자가 작가를 어떻게 대할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지요. 작가는 자신만을 알뿐 독자를 모릅니다. 이 만남의 비대칭성 때문에 작가는 더욱 독자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비굴이 아닌 건 아시지요. 겸손은 친절함입니다. 겸손은 존중입니다. 무엇보다 작가는 자신에게 먼저 친절하고 자신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기사랑과 자기긍지가 필요합니다. 자기사랑과 자기긍지는 과장이 필요치 않습니다. 자신의 나약한 점이나 부족한 점, 곤란한 점이나 어려운 점도 긍정합니다. 자신을 긍정하면서 솔직히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을 충실히 드러낼 때, 신뢰의 토대가 쌓입니다.
작가는 독자보다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만, 독자보다 솔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진실되게 드러낼 때 독자는 그에게 손을 내밉니다. 미지의 독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전달됩니다. 작가는 그 마음을 믿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