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시험으로 배운다고?
많은 배움이 정신을 어지럽히고
많은 시험이 삶을 힘겹게 합니다.
시험에 시달리면 고통만 늘어납니다.
배움이 중요하다지만
정말 시험으로 배울 것이 있습니까?
배움은 앎의 확인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보십시오
당연한 것은 과연 당연한 것일까요? 학교에서 시험은 당연한 것일까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시험’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시험은 감시하는 위계질서의 기술과 규격화를 만드는 상벌 제도의 기술을 결합시킨 것이다. 시험은 규격화하는 시선이고, 자격을 부여하고 분류하고 처벌할 수 있는 감시이다. 그것은 개개인을 분류할 수 있고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가시성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규율의 모든 장치 안에서 시험은 고도로 관례화되어 있다. 시험에는 권력의 의식(ritual)과 경험의 형식, 힘의 과시와 진실의 확립이 결합되어 있다. 규율과 훈련 과정의 중심에 있는 시험은 객체로 인식되는 사람들의 예속화를 나타내는 것이자, 예속된 사람들의 객체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 시험이란 권력이 자신의 위력의 표시를 전달하거나 스스로의 표시를 그 대상에게 부과하는 대신, 대상을 객체화의 구조 속에서 포착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한마디로 시험은 ‘감시와 처벌’을 위한 도구이자, 교사들의 ‘힘의 과시’이고, 학생들을 ‘예속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의 시험은 학생을 성장시키는 도구가 아닙니다. 끊임없는 ‘차별’을 영구히 지속시키려는 악마의 수단입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런데도 자유와 평등을 가르쳐야 하는 학교에서 이 악마적 수단이 지속되는 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