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인간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어디일까요? 우리는 그동안 지구의 최종포식자로, 만물의 지배자로, 지구상에 가장 뛰어난 존재로 스스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그 어떤 존재부터 높은 지위와 권리를 가지고 있는자가 인간이라는 생각입니다. ‘만물의 영장(令長)’이라는 칭호가 붙어있었지요.
이렇게 인간중심주의적 생각을 해왔기에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그저 이용가능성의 여부에 따라 해롭다, 이롭다, 무용하다, 유용하다는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구를 자원으로 마음껏 이용하면서 파헤치고, 뿌리뽑고, 잘라내고, 죽이고, 소모했습니다. 인류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생물종을 멸종시켰습니다. 또 이용가능한 종은 가축으로 만들어 생물의 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증식시키고, 이용하고, 잡아먹고, 폐기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생태계의 위기와 기후 위기가 닥쳐왔고, 인간이 자연에게 가했던 폭력은 고스란히 인류에게 돌아왔습니다. 20세기가 들어서야 인류는 생태의 중요성을 깨닫고 환경운동, 생명운동, 생태운동으로 자신의 삶의 반성하면서, 인간의 자리를 새롭게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자연이 일원으로, 자연 속에 살면서, 다른 생명과 더불어 공존해야하는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존재가 아니라, 만물의 일원임을 머리로나마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작가는 지식생태계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 존재일까요? 지식생태계란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면서 더 나은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는 유형 무형의 네트워크 총체입니다. 개별 작가 이전에 작가를 탄생시킬 수 있는 생태계 자체가 없었다면,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발표할 수도, 유통시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문자문명의 역사적 진화과정에서 개별작가가 탄생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특권층만이 문자를 사용했으니 작가의 탄생은 더욱 드물었겠지요. 대한민국은 그나마 문자해독률이 매우 높은 나라이고, 국민교육이 권리로 보장되는 나라이며, 세계 최강의 인터넷 강국입니다. 작가가 탄생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생태적 조건을 가지고 있지요. 작가가 작품을 생산했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았으면 그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매체가 국한되어 소수만이 그러한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작가가 작품을 생산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유통시킬 수 있는 도서관이나 서점이나 인터넷 환경이 없었다면 독자가 그 작품을 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설령 작품이 독자의 손에 쥐어졌다하더라도 그것을 읽고 감상할 수 있는 독자의 능력이 없었다면, 작가의 작품은 한갓 휴지조각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공간적 조건의 변화와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의 유기적 구조를 생각해본다면, 작가는 지식생태계의 왕이 아니라 한 일원일 뿐이라는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 내가 글을 쓰고, 발표하고, 누군가가 그 글을 읽고 느끼는 모든 과정이 어느 때, 어느 공간에는 아예 불가능할 것임을 생각할 때, 고맙고 고맙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 글을 배우고,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능력을 갖게 된 것도 기적과 같고, 이 초라한 작품이라도 누군가는 간직하고 유통시키고, 또 어떤 누군가의 눈에 들어 읽힐 수 있다는 것도 기적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모든 만물에 감사하고 오늘 글쓸 수 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