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고양신문> 2021.4.8일자
올해는 벚꽃을 일찍 보았다. 이상하다 생각하여 기사를 찾아보니 100년 만에 가장 일찍 핀 벚꽃이란다. 벚꽃뿐만이 아니었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점점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것은 기후의 변화 때문이다. 꽃들의 개화는 자신의 의지대로 시기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평균기온의 상승에 영향을 받는다. 일찍 본 꽃들이 반가우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기 마련이다. 예전 같았으면 제법 오랫동안 우리를 감동시켰을 벛꽃들이 피기 무섭게 사방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3주 연속 주말에 비가 내린 것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나무에서 꽃들이 떨어지자, 길들이 떨어진 꽃잎으로 꽃밭이 되었다. 아름답지만 처연했다. 나무에 달린 꽃들은 제법 오래 젊음을 유지하지만, 떨어지고 나면 이내 시들어 버린다. 일찍 온 청춘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벛꽃은 금세 검은 색으로 변색되는 목련과는 달리 옅은 분홍으로 거리를 장식했다. 호수공원을 돌며, 꽃분홍 낙화길을 걸으며 나는 인생을 생각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은 열흘을 못 간다는데 우리는 인생이 오래 갈 것이라 착각한다. 그래서 쥐고 있는 것 놓지 못하고 추하게 늙어가고 있다. 꽃 피는 모습이 아름답다면 꽃 지는 모습도 아름다워야 하리라. 권불십년(權不十年), 권력도 10년을 못 간다. 천 년 만 년 해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 권력뿐이랴. 재력도, 법과 제도도, 전통과 관습도 시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반드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 성취가 가파를수록 몰락도 가파를 수밖에 없다. 100세 인생이라 해도 절반을 넘겼으니, 이제 내려갈 길을 살피고 조심조심 살아야겠다. 그렇게 늙어가는 길이 추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은의 시마따나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때는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탄생을 준비하는 것만큼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당당히 맞이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죽음의 길이 억울함과 분노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그는 분투했다. 소크라테스의 주변 사람들이 사형판결의 결과를 부인하고 감옥에서 탈출하여 망명을 권했을 때에도, 소크라테스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운명과 대면했다. 사형집행일에도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삶과 죽음을 숙고하며 친구들과 아름다운 대화의 시간을 나누었다.
비록 우리의 삶을 철인왕의 삶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낙화길을 걸으며 그의 삶을 닮아가길 소망한다. 아무런 두려움이나 미련 없이, 남김 없이, 바람 없이 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처럼 나도 그렇게 떨어지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죽음이 공포가 아니라 자유가 되기를, 몰락이 아니라 성숙이 되기를, 소멸이 아니라 베풂이 되기를 바란다.
슬프지만 너무 슬퍼하지 않고, 아프지만 너무 아파하지 않고, 돈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 하늘이 바라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리 쓸쓸하지는 않으리라. 욕망에 휘둘리지 않아 편안해지는 노년을, 태어남이 아름답다면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요즘 사랑하는 문우들과 카찬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다. 대한민국 50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책이란다. 저자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저자의 묘비명은 훔칠 수 없지만 그의 정신은 훔치고 싶어진다. 비가 갠 다음날 낙화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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