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 텍스트들을 읽었지만 이런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 것은 『천 개의 고원』을 만나면서였다. 보다시피, 나는 나를 중심으로 놓고 모든 것을 대상화하면서 재단하고 있다. 나를 빛나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말이다. 이것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흰 벽(뺨)과 검은 구멍(눈)’이라는 ‘얼굴성’으로 설명한다. ‘얼굴’이란 타인에게 나를 전달하는 채널이다. 표정을 통해 내가 드러나는데 이는 ‘얼굴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내 안의 확고한 관념을 흰 벽에다 적어 놓고서는 그것에 맞춰 사람들을 줄 세우고, 그런 다음 검은 구멍 안으로 빨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편, 공부, 감이당은 yes! 깡패, 아토피, 불구는 No!’라는 식으로. 동일화하거나 배제하는 것, 이것이 ‘얼굴성’이 가진 실체이자 폭력이다.”(김지숙, ‘천 개의 고원: 얼굴을 지워라!’ 중에서)
《나는 왜 이 고전을》(북드라망, 2019)는 고미숙선생의 감이당&남산강학원에서 대중지성과정을 수강하는 학생들 48명이 쓴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모음집이다. 글쓴이 48명의 연령대와 직업군은 그야말로 다종다양하다. 주로 고전평론가 과정을 수강한 학생들과 청년스페셜 과정을 수강한 학생들이다. 글도 짧고 재밌으며, 구체적이어서 술술 읽힌다.
그런데 이들이 읽은 책이 만만치 않다. 법구경, 장자, 도덕의 계보학, 비극의 탄생,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산시로, 그리스인 조르바, 열하일기, 유식 30송, 이옥 전집, 회남자, 금강경, 맛지마 나까야, 동의보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홍루몽, 슬픈 열대, 외침, 숫타니파타, 티벳 사자의 서, 전습록, 말과 사물, 모비딕, 주역, 마음 등. 1년의 한 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밟는다고 하니 못할 것 없다 싶다가도, 그 1년을 잘 버텨내는구나 생각하니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고전이고 글쓰기일까? 고미숙 선생은 말한다. “쓴다고 생각을 해야, 읽기가 깊어져요. 저도 글쓰기를 안 하면 책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또 생각하고 마음을 다해서 읽을까 싶거든요. 절대로 안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쓰기가 없으면 읽기가 굉장히 빈곤하고 빈약해집니다. 그러면 지도가 맨날 흐릿해지는 거죠. 그래서 길을 잃고 또 잃고 또 잃고.... 이렇게 되는 게 인생이거든요. 그럴 바에는, 우리가 지도를 계속 찾아야 된다면, 지도 중의 지도인 고전과 만나, 고전을 내 삶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장 적극적인 활용방법은 당연히 고전을 나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다시 쓰기 하는 그런 과정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쓰고 읽기를 하게 되면 그게 내 몸에 집중력을 주고, 생활에서 긴장과 이완의 조율이 가능해지게 돼요. 이런 게 없으면, 아주 산만해지거나, 너무 긴장을 하거나 이 두 가지로 살게 되지요. 고전을 통해서 읽고 쓰기를 하면 삶을 조율하는, 너무 빡세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은, 그런 조율하는 힘이 생겨요. 그래서 이것을 양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p.s. 고전 읽기에 어려운 사람, 글쓰기 힘든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책이다. 아마도 자극이 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일단 성공! 도전하면 된다. 가까운 곳에서 고전 깊이 읽기 하는 곳은 많으니, 그곳에서 도반을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