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작가들은 저마다의 글쓰기 루틴이 있습니다. 김훈이나 하루키처럼 하루의 분량을 정해놓고 쓰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조정래처럼 시간대를 정해놓고 글을 쓰는 작가도 있습니다. 특정한 장소를 선호하는 작가도 있지요. 이렇게 일정한 루틴(routine)을 정하는 것은 자칫 게을러지기 쉬운 일상에 대한 경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아침예불이나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도 그들만의 거룩한 루틴이지요. 루틴이 종교적 의례처럼 엄격해지면 리추얼(ritual)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예불이나 기도는 리추얼적 성격이 강하지요.
나의 경우는 하루에 적어도 한 편(꼭지) 정도로 꼭 쓰려고 합니다. 특히 브런치 작가로 등록하고 나서는 이러한 루틴이 리추얼 수준으로 격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비결은 없습니다. 스텝 바이 스텝. 한 문장 한 문장 채워나갈 뿐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아무리 긴 글도 한 문장부터입니다. 저는 이 성실함을 무엇보다 신뢰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성실함만으로는 결코 실현되지 않는 게 글쓰기입니다. 컴퓨터만 켜면 쓸 수 있는 것도, 공책만 열면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안 써지는 글을 억지로 쓰겠다고 해서 써지는 것도 아닙니다.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듯이, 글쓰기에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의욕만이 다가 아닙니다. 능력만이 다가 아닙니다. 아웃풋(out-put)이 있으려면 반드시 인풋(in-put)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쉬운 인풋은 무엇보다 개인의 체험이 되겠지만, 체험에는 한도가 있기에 저는 지속적인 독서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일찍이 안중근 의사가 멋진 글씨로 남긴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서 가시가 돋는다”는 이 문장은 출전이 정확하지 않아 안중근 의사가 직접 지은 문장인 듯합니다. 여름철 하루라도 농장에 나가서 풀을 잡지 않으면 어느새 풀이 작물을 뒤덮듯이, 독서를 하지 않으면 좋은 생각을 어지럽히는 잡생각으로 넘쳐날 수도 있습니다. 독서는 좋은 글감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좋은 문장을 열심히 읽다 보면 자신의 문장도 잘 살필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글은 이러한 좋은 생각과 좋은 문장들이 이미 어느 정도 쌓여있을 때 쓸 수 있습니다. 좋은 감을 따고, 고르고, 깎고, 말려 곶감으로 저장해 두었다가, 먹고 싶을 때 한두 개 빼먹는 것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쓸 것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이지, 쓰려고 한다고 써지는 게 아닙니다. 원고지만 찢어 구기고, 커서만 왔다 갔다 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심각한 포즈를 취한다고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글이 써지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을 탓하지 마시고, 평소에 인풋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곶감은 얼마나 마련해 놓았는지, 메모나 생각노트는 얼마나 정리해놓았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글쓰기에 억지는 없습니다.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안 써진다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실성을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마 밥도 안치지 않았는데, 숭늉을 찾고 계시지는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