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인터넷판 2021.10.5일자
올해 EBS가 기획한 연속강의 <위대한 수업>이 있습니다. 전세계의 명사들을 초대하여 1인당 4~5차례에 걸쳐 방영했는데요.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강의는 『젠더 트러블』을 쓰면서 일약 스타가 된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였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강의보다는 그의 강의를 둘러싼 여론의 반응이 놀라웠는데요. 다른 강의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다가 버틀러의 강의가 시작되자 EBS 앞에 몰려가 반대시위도 하고, 보수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방송금지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강의내용은 페미니즘에 대한 교양강의 수준이었는데, 이 정도의 내용도 수용할 수 없는 우리나라 현실이 오히려 씁쓸했더랬습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 합의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 같습니다. 이대남과 이대녀의 갈등의 뿌리에도 이 패미니즘이 있지요.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의 용어의 문제조차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재작년에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를 통감하고 독서를 통해서 흐름을 어렴풋이 잡고, 다양한 용어들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다보니 새로운 관점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용어는 늙음의 문제를 다층적으로 사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생물학적 성 개념인 섹스, 사회적 성 개념인 젠더, 개인의 성적취향과 관련된 섹슈얼리티라는 구분은 생물학적 늙음과 사회학적 늙음과 개인적 늙음으로 구분하고 이해하는 데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생물학적 늙음은 인간이면 누구나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문제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신체적, 정신적 상태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노화나 건강의 문제는 노인의 객관적인 문제지요. 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문제가 곧장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농경이 중심이고 대가족을 형성했던 조선시대는 재산과 지식의 소유자였던 노인이 존경을 받는 처지였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핵가족을 형성하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재산과 최첨단 지식의 소외자인 노인은 무능자로 낙인찍히기도 하지요. 같은 생물학적 노인이지만 사회적 조건과 역할에 따라 이리도 천차만별의 대접을 받게 됩니다. 노인 자살률이 그 어느 세대보다 높은 것 역시 개인적인 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노인이 차지하는 역할과 지위가 그만큼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사회적 증거입니다.
한편 늙는다고 모두가 추해지고 탐욕스러워지며 고집불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성격과 성품의 문제인 거지요. 생물학적 늙음과 개인적 성격이나 성품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젊어도 추하고 탐욕스럽고 고집불통인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니 늙으면 꼰대가 된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늙으면 추해지는 것이 아니라 추한 사람이 추해지는 것입니다. 대선 후보들을 보십시오. 나이가 들었다고 똑같지 않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늙어갈수록 더욱 소중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성품을 가꾸어야 합니다. 지혜는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자에게 다가오는 선물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다른 세대를 위해서 뭔가를 남기려면 자신의 삶을 절제해야 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탐욕스런 욕망을 줄이고 베풀 줄 아는 자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서로 의지하고 의존하는 우정이 더욱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체력에 맞는 노동을 찾아 생명을 가꾸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늙음에 대하여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