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창조의 시간

<사부작 사부작> 칼럼

by 김경윤

존재는 변화요, 변화는 성숙이고, 성숙은 창조다.

- 베르그송


코로나로 세상이 바뀐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조만간 끝나겠지’에서, ‘언젠간 끝나겠지’로, 이윽고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로 생각이 바뀌는 동안, 정작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변화하는 환경에 끌려가듯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이 있는가 하면, 변화를 성숙의 계기로 삼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능동적인 삶이 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우리의 삶이 과잉이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경쟁하고, 지나치게 생산하고, 지나치게 소비하고, 지나치게 버리면서, 인간들은 지나치게 소외되거나 계층화되었고, 자연은 지나치게 파괴되거나 소멸되어 버렸다. 이 지나침이 위기를 낳았고, 위기가 쌓여 재난이 일어난 것이다. 일엽지추(一葉知秋),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서도 가을을 예감할 수 있었던 지혜는 사라지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 지나치게 낙관하면서 과잉 정치, 경제, 문화활동을 한 것이다. 그만하면 됐다는 적정한 삶은 관성적 속도에 휩쓸려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문화 차원으로만 한정해서 보자면, 그동안의 문화는 규모의 문화, 셀럽의 문화였다. 유명인들은 더 유명해지는 승자승의 차가운 경쟁문화가 지배했었다. 대규모의 문화행사를 잘 치러내는 것이 마치 능력인 양 생각했다. 지역에서 힘겹게 삶을 꾸려가는 문화예술가의 생태계는 그러는 사이에 점차로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규모와 성과만을 측정도구로 삼는 문화예술지원 정책은 변화없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은 문화모임에 대한 지원과 지역 문화예술가들의 대한 관심이 이제 막 싹이 트고 있다. 성과가 아니라 보람이, 실적이 아니라 연대가, 규모가 아니라 다양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자본을 무기로 대형서점이 등장하면 지역의 작은서점들은 문을 닫고, 브랜드 상품이 뜨면 소상공인의 피땀흘린 노고는 무력해지는 방식으로는 지역 문화생태계의 건강성을 확보할 수 없다. 지역에 있는 작은 서점, 작은 가게를 살리는 것은 지역에 살고 있는 성숙한 주민이 나서야 한다.


자기 자식 못났다고 남의 자식을 부러워하는 어리석은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못난 자식에게 세심한 사랑과 배려를 쏟는 것이 부모된 도리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지적질로 주눅든 아이가 잘 성장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의 인내가 필요하다. 남의 자식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자식이 잘 성장하도록 힘을 쏟자. 모든 자식은 자기 고유의 삶과 속도가 있다. 그 속도에 따라 다양한 창조적 존재로 성장하는 것이다. 토끼의 걸음과 거북이의 걸음을 비교하지 말자. 지렁이도 꿈틀대며 앞으로 나아가고, 달팽이도 느릿느릿 전진하고 있다. 각기 다른 속도와 규모로 행복하자.


무엇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성숙의 시간을 제공했다. 코로나로 힘들어진 상황을 인내하면서, 이 상황을 성숙의 자양분으로 삼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삶을 발견하고, 지역에서 주민들과 연대하며, 작지만 보람되고 아름다운 작은 모임들을 활성화하고, 작은 서점, 작은 상점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작은 꿈들을 천천히 차분하게 이루어가는 창조적인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천천히, 지속적으로! 니체가 말했듯이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귀한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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