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칼럼쓰기 1 : 삶은 춥지만

<고양신문> 인터넷판 (2022.1.24.)

by 김경윤

2011년 7월 13일 비영리법인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설립했다. 올해로 12년차다. 4월 17일자로 이 도서관이 없어진다. 집주인에게 사무실을 빼달라는 최후통보를 받았다. 받는 그 순간 잠시 아득해졌다. 잠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찰나의 순간, 10년 넘는 세월이 만화경처럼 흘러갔다. 처음 계약할 때 집주인이었던 자상한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후에 건물주가 된 막내아들도 당뇨합병증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새로 주인이 된 큰아들 집안과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집주인이 3번이나 바뀌던 동안 나보다 먼저 세들어 살고 있었던 봉제공장이 폐업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코로나의 여파였다. 막내아들이 키우던 뭉게라는 개도 다른 곳으로 팔려나갔다. 이제는 나만 남았는데, 이 역시 이곳에서 더 이상 도서관을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도서관에서 30여 권의 책을 썼고, 청소년들과 서울대 추천 고전 100선을 공부했고, 청소년농부학교와 청소년작가교실을 운영했다. 매주 1회 이상 인문학 강의도 진행했다. 앞마당에 상자텃밭을 가꾸고 이웃과 나누기도 했다. 밖에 만들어놓은 나무테이블은 동네의 쉼터 역할을 했다. 비록 소박한 장소지만 비영리로 운영하면서 정이 퍽 들었다. 그 10년 넘는 역사를 이제는 종료해야 한다. 10년 동안 겨우 월세를 내고 지냈기에 지금의 재정상태로는 새로운 도서관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비록 사립도서관이긴 하지만 공공의 자산이라 지역공동체의 사랑방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수많은 영세 가게가 폐점을 하고, 수많은 사람이 실직을 하는 시절이고 보면 나만 겪는 일은 아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인생은 항상 예상 밖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감내하고 살아야 하니까. 내 인생의 한 마디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내 나이 이순(耳順)을 바라본다. 지천명(知天命)도 까마득한데 나이만 먹어간다. 도서관에 문을 열고 들어가 그동안 사들이고 읽었던 책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한 권 한 권 손때가 묻은 책들이다. 이 책들도 언젠가는 내 손에서 떠나갈 것이다. 그 언젠가가 조만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별은 운명이다.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래도 아직 세 달이나 남아있다. 당장 내일이 아니니 다행이다. 책들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정리하고, 역사를 정리하고, 추억을 정리할 시간이 그나마 남아있다. 책들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 더 이상 소용없는 것들을 버리고, 남는 세간살이들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된다. 남는 시간 책도 한 권 더 쓸 것이다. 이 장소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과 작은 모임을 갖고 망소회(忘所會)라도 한 두 차례 가질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다.


도서관이 없더라도 삶은 지속될 테니까,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이참에 내가 안고 살았던 짐들도 정리해야겠다. 능력에 비해 턱없이 많았던 일들도 정리하고, 단출하고 간소하게 살아야겠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더 작은 삶을 추구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보내야겠다. 내려놓자. 내려놓자. 스스로 읊조려본다. 한결 마음이 평온해진다.


눈을 감고 감사한 일들을 떠올려본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지인들에게 신세를 졌다.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10년 넘는 세월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나의 불안한 생활을 염려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인생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니 앞으로도 나는 많은 것에 기대어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내가 기대어 살 듯이, 나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씩 곁을 주고, 온기를 나누며,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를 소망한다. 삶은 춥지만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삶은 춥지만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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