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칼럼쓰기 2 : 주례사 잡감(雜感)

<고양신문> 인터넷판 (2022.2.28일자)

by 김경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번 대선 후보들과 내가 동갑이거나 서너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니 나에게 주례사를 부탁했을 때, 나이 문제로 거절하는 것은 이제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요즘 결혼식은 주례사 없이 신랑신부 가족이 알아서 하는 방식이 유행이라 주례사를 부탁받은 것은 낯선 일이다. 되돌아보니 주례사를 처음 한 것은 아니다. 청년단체 시절 결혼식 없이 동거하는 청년노동자 부부를 위해 여름수련회 때 단체회장의 자격으로 주례를 선 적이 있었다. 그후 고양시로 이사 와 같이 공부하는 청년 윤상근이 주례사를 부탁하여 승낙한 것이 두 번째다. 이번에 다시 주례사를 부탁받고 흔쾌히 하마했다.


이제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니 주례사를 해야 하는 실감이 밀려온다. 이번 부부에게는 무슨 말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몇 마디가 떠올랐다. 새로운 생각보다는 평소에 하던 이야기를 해주기로 한다. 하나가 먹고사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야기를 해야지. 분량은 A4용지 한 장 분량, 시간은 10분 이내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식날 주례가 길어지는 것만큼 결혼식 분위기를 잡치는 일은 없으니까. 짧고 굵게!


먼저 먹고 사는 이야기. 우리집 가훈 몇 개 중 하나가 ‘국영수 대신 의식주’다. 결혼을 하든 말든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먹고 사는 방식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자면, 벌어먹든 지, 지어먹든 지, 빌어먹든 지다.

벌어먹는 것은 남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면서 먹고 사는 방법이다. 직장을 다니든 자영업을 하든 결국 상품성이 있어야 벌어먹게 된다. 평소 장모님 말마따나 ‘남의 돈 먹기가 쉽지 않다’. 정성과 친절을 다하는 것이 첩경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의 돈 먹으려니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함께 고달플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방법을 주로 택하여 살고 있다.

지어먹는 것은 자신의 의식주를 스스로 만들어 먹고 사는 방법이다. 농사를 짓든, 집을 짓든, 글을 짓든 생산적인 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주 적은 사람이 이 방법을 택하여 살지만 살기가 녹록하지는 않다. 팍팍하다. 그래서 자신의 원하는 삶으로 사는 사람은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빌어먹는 것은 남에 의존하여 먹고 사는 방법이다. 거지를 떠올리겠지만, 예수나 부처 같은 성인도 이 방법을 택했고, 우리의 삶의 대부분의 시기가 이 방법으로 살아간다. 태어나서 성장할 때가 우리는 부모에게 빌어먹는다. 빌어먹으려면 전제가 있다. 상대방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랑의 색깔이 연민이 되었든 존경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사랑이 없다면 빌어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다.


사랑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추상적인 ‘사랑’이라는 표현보다는 ‘아낌’이라는 말이 사랑의 성격을 나타내기에 좋은 표현인 듯하다. 아낌이란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을 진짜로 아낀다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겠다”는 경지이다. 그런데 상대방 손에 물 안 묻히려면, 내 손은 물을 잔뜩 묻혀야 한다. 상대방은 깨끗하게 되고 나는 더러워지는 것, 상대방은 편하게 되고 나는 힘들어지는 것. 상대방은 모든 것이 되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상대방을 아끼려면 나는 아낌 없이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게 사랑의 역설이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재밌으려나? 유익하려나? 그거야 당일 식장에 모인 분들과의 교감의 문제이니 예단하지는 말자. 할 이야기가 정해졌으니 이제 주례사를 써야겠다.


출처 : 주례사 잡감(雜感)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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