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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Nov 22. 2022

장자를 달린다 17 : 강과 바다의 대화

- 17편 <추수(秋水)>

인위로 자연을 손상시키지 마세요. [無以人滅天]

고의로 운명을 어기지 마세요. [無以故滅命]

헛된 명성으로 목숨을 버리지 마세요. [無以得殉名]

자연을 지켜 잃지 마세요. [謹守而勿失]

이것이 참됨으로 돌아감입니다. [是謂反其眞]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우는 워런 버핏

만약에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쯤 지불할 용의가 있나요? 가장 비싼 점심식사 비용을 지불해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워런 버핏이 아닐까 싶습니다. 투자의 천재 워런 버핏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서 1년에 한 번 경매가 열리는데요, 낙찰 비용은 보통 30~50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 최고의 낙찰가는 2019년 중국 가상화폐 트론 창업자인 저스틴 선이 써낸 456만 7,888달러(약 57억 원)이었다고 하네요. 밥값이 아니라 아마도 그의 경륜에 대한 값이라 해야겠지요. 저스틴 선이 점심시간에 워런 버핏에게 무엇을 물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현재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만나서 점심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만나고 싶나요? 그리고 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요? 나라면? 당연히 장자겠지요.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재밌고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장자》가 있습니다. 그 중 <추수(秋水)>편은 특히 귀합니다.

《장자》 17편 <추수>편은 황하의 신 하백(河伯)이 북해의 신 약(若)을 만나 나눈 광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위나라 광땅에서 도적으로 오인되어 갇힌 공자 이야기, 명가(名家)의 대가 공손룡 이야기, 장자가 초나라 재상 자리를 거절한 이야기, 장자의 친구인 혜시와 장자가 얽힌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흥미를 더하지만, 앞절에 나오는 하백과 약의 대화는 《장자》 전체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백미(白眉)라 할 수 있습니다.      


가을 물이 불어 황하는 엄청난 기세로 흘러갑니다. 황하는 천하의 모든 아름다움이 가신에게 갖추어졌다고 뻐기며 동쪽으로 흐르다가 드디어 북해에 도달하지요. 황하는 북해를 보자 자신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황하 하백(河伯)은 그의 문하가 되어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하나하나 묻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북해 약(若)은 친절하게도 그의 질문에 상세히 답합니다. 이 둘의 문답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가장 만나고픈 사람을 만나 가장 귀한 시간을 보내는 것마냥 다정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하백은 자신의 오만함을 사죄하며 북해 약의 위대함을 칭송합니다. 하지만 북해 약은 자신조차도 천지의 비하면 지극히 작은 존재라면서 크다 작다는 상대적인 견해일 뿐이니 그런 관점에 사로 잡히지 말라고 말하지요. “중국도 사해 안에 있다고 생각해보면 큰 창고 안의 한 톨 쌀알 같지 않을까요?”라고 물으면서, “사람도 만물과 비교해보면 말 옆구리에 붙은 가느다란 털끝 같지 않을까요?”라고 물으면서 말입니다.

하백이 그러면 천지는 크고, 털끝은 작은 것이냐 물으니, 북해 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작다고 소홀하지 않고, 크다고 대단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크기에 끝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털끝이 작은 것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라 말할 수 없고, 천지가 큰 것 가운데 가장 큰 세계라고 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물리학과 우주론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인간의 삶에 적용할 때가 더욱 흥미진진합니다. 과학에서 논리학을 거쳐 인문학으로 슬쩍 건너가는 장자의 글솜씨에 놀랍니다.

하백이 약에게 묻습니다. 인간들은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고, 큼과 작음을 구별하는데 그 기준은 무엇이냐고요. 그러자 약은 무엇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대답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6가지 관점을 제시합니다. ① 도(道)의 관점에서 보자면,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없습니다. ② 물(物)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합니다. ③ 세속(俗)의 관점에서 보자면, 귀천을 정함이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④ 차이(差)의 관점에서 보자면, 크다 하면 모든 것이 크고, 작다 하면 모든 것이 작을 수 있습니다. ⑤ 쓸모의 관점에서 보자면, 각기 쓰임에 따라 귀천이 결정될 것입니다. ⑥ 취향(趣)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지요. 무엇을 기준으로 보냐에 따라 귀천이 달라지고, 대소가 결정된다면 그것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귀함과 천함을 나누고, 큼과 작음을 구별하는 일 따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백! 부디 잠자코 입다무세요. 귀천의 문이 어디에 있는지, 대소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굳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도(道)의 관점을 택하라 말합니다. 도는 영원회귀[反衍]하며, 차별 없이 베풀고 [謝施], 경계 없이 [無方] 품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분하고 차별하는 인위를 택하지 말고 본래의 모습에 따라 저절로 변화하는 자연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백이 묻습니다. “무엇이 자연이고 무엇이 인위입니까?” 북해 약의 대답은 간명합니다. “소나 말의 발이 네 개인 것이 자연이고, 고삐와 코뚜레는 인위입니다.” 그리고 당부합니다. “인위로 자연을 손상시키지 말고, 고의로 운명을 어기지 말고, 헛된 명성으로 목숨을 버리지 마세요. 자연을 지켜 잃지 말고, 참됨으로 되돌아가세요.”      

스웨텐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노자는 《도덕경》 40장에서 “도는 돌아가는 것(反者 道之動)”이라 말하더니, 장자는 《장자》 <추수>편에서 북해 약의 목소리를 빌어 “참됨으로 돌아가라.(反其眞)”고 말합니다. 인위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이 외침은 노자와 장자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는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의 목소리로, 그리고 수많은 환경운동가들과 생태민주주의자들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들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그 목소리에 화답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그냥 살아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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