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살기를 누구나 바랍니다. 즐겁게 살기를 누가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행복하게 살려면, 즐겁게 살아가려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꼼꼼히 따져보지는 않습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등장한 쾌락주의 철학자들은 바로 이 행복의 문제를 꼼꼼히 따지고 있습니다. 행복추구를 철학의 목표로 삼았던 에피쿠로스학파는 진정한 즐거움은 마음의 평정(아타락시아, ataraxia)라고 보았습니다. 스토아학파는 무욕(無慾, apatheia)이라고 보았지요. 쾌락주의 철학의 대표급에 해당하는 이 두 철학사조가 최고의 쾌락을 위한 덕목으로 무욕과 마음의 평정을 꼽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보통 쾌락하면 육체적 즐거움이나 먹고 마시는 것을 떠올리는데, 쾌락을 깊이 있게 생각해본 서양철학자들은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합니다.
같은 시기 동양의 쾌락주의자 장자는 <지락(至樂)>편에서 진정한 즐거움에 대하여 꼼꼼하게 따져 묻습니다. 처음에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천하에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자기 몸을 잘 살리는 길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몸담아야 하는가? 무엇을 따라 나가야 하고, 무엇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가? 무엇을 즐거워해야 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그리고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존중하는 것을 하나하나 꼽아봅니다. 부귀(富貴)와 장수(長壽)와 명예(名譽), 몸의 안락과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옷과 멋진 음악 같은 것들을.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이 “육체만을 위한 것이니 어리석은 짓”이라 말하며 행복추구의 최고의 덕목으로 ‘무위(無爲)’라고 말합니다.
왜 무위(無爲)가 최고의 덕목일까요? 하늘과 땅은 무위하면서도 만물을 번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무위한데 그로 인해 맑다. 땅은 무위한데 그로 인해 안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 두 가지 무위가 서로 합쳐져 만물 모두가 변화하는 것이다. 아득하고 아련하여 그 근원을 알 수가 없다. 아득하고 아련하여 그 형체를 알 수가 없다. 만물이 번성하고 있지만 모두가 무위로부터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은 무위이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天地無爲也而無不爲也] 세상 사람으로 그 누가 무위할 수 있겠는가?”
안토니오 살가도가 그린 바티타스화(1634년 작) 해골을 소재로 죽음을 다룬 그림들이 16, 17세기에 많이 그려졌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놀랍습니다. 아내의 주검 앞에서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장자 이야기, 몸에 생긴 불치의 혹이 생겼을 때 나눈 두 친구 이야기, 장자가 초나라를 가던 중 밤이 되어 해골을 끌어안고 자다가 꿈 속에서 해골과 나눈 이야기, 인간에게 잡혀 종묘에 가둬진 채 사흘만에 죽은 바다새 이야기, 열자가 해골과 나눈 이야기 등이 나옵니다. 지극한 즐거움을 다루는 글에 등장하는 소재가 대부분 죽음과 질병입니다. 인생을 생노병사(生老病死)라 한다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참으로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일이지요. 만약에 이 불행한 일을 자연의 변화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장자처럼 노래 부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요?
즐거울 때 즐거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괴로운 상황을 맞았는데 마음의 동요가 없다면 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러한 경지가 ‘마음의 평정’을 말한 에피쿠로스학파나 무욕(無慾)을 말한 스토아학파가 도달하고픈 경지가 아니었을까요? 장자가 진정한 즐거움의 덕목으로 ‘무위(無爲)를 이야기한 것과 묘한 공명현상이 일어납니다.
하늘은 맑고, 땅은 평온합니다. 사시사철이 갈마들며 생명을 돌보고 키웁니다. 온갖 변화에 놀라지 않고 만물을 번성시킵니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나 모든 것을 누리고, 어떤 명예도 없지만 가장 명예롭습니다. 즐겁다 말하지 않으나 모든 것을 즐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모든 것을 합니다. 그것이 무위(無爲)입니다. 그 무위를 본받으면 평생이 평안합니다. 그 무위를 외면하면 사사건건 동요합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삶, 모든 것을 그대로 바라보면 평정할 수 있는 태도, 무위(無爲)에서 나옵니다. 무위야말로 우주의 춤이고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