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 이유는 욕망을 좇아 살다가 무리(無理)를 해서입니다. 마음이 고달픈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치도록 살고 있습니다. 철학자 한병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피로사회’로 진단한 바 있습니다. ‘규율사회’가 남이 나를 착취하는 사회라면, ‘피로사회’는 내가 나를 착취하는 사회입니다. 경쟁사회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쉼 없이 달려가야 하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하고 뿌리 뽑힌 우리네 인생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장자》 19편 <달생(達生)>편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비판적으로 통찰하면서 몸과 정신을 손상시키지 않는 법에 대하여 수많은 에피소드를 제시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달생(達生)’은 통달한 삶, 또는 삶에 통달하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장자가 제시하는 삶은 대자연의 모습과 어울리는 삶을 뜻합니다. 어울린다는 말은 잘 들어맞아 어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무리가 없으니 손상되지 않습니다. 손상되지 않으니 오래갑니다.
노자에게 《도덕경》을 얻었다는 관윤과 그의 제자 열자의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열자가 지극한 사람의 경지를 묻자, 관윤이 대답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수레에서 떨어져도 덜 다치는 이유는 술에 취한 바람에 죽음과 삶, 놀람과 두려움이 그에게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술에 취해서 이 정도인데, 하늘에 취한 성인은 어떻겠냐고 묻습니다. “성인은 자연에 몸을 담고 있으므로 아무것도 그를 손상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날카로운 칼이나 바람에 날려온 기왓장이 그의 신체를 다치게 했어도 칼이나 기왓장을 원망하지 않듯이, 그는 무심한 경지로 천하태평하게 될 것이다.” 마치 나무가 바람에 가지가 꺾어도 바람을 원망하면서 마음이 상하지 않듯이, 자연에 어울리는 사람은 자신에게 불행이 닥쳐 신체에 손상이 오더라도 결코 그 상태를 원망하거나, 그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습니다.
오호라, 삶에 통달한다는 것은 어려움이나 비극적 사태를 요리조리 피하는 처세술이 아니라 어떠한 사태에 맞닥뜨리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자연의 흐름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삶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잘 알아차리고 사는 것이 통달한 삶입니다.
여기서 자연의 원리는 앎의 단계와 잊음의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물의 원리는 알면 헤엄을 잘 치고, 잠수도 잘하며, 배를 저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자연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앎이 지극해지면, 삶을 지극히 살게 되면 우리는 앎의 단계를 넘어 잊음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기성자가 이야기하는 최고의 싸움닭에서 목계지덕(木鷄之德)이라는 한자성어가 나옴
<달생>에서는 공자와 매미 잡는 꼽추의 이야기에서, 활쏘기장에 서 있는 공자와 안연의 대화에서, 싸움닭 조련사 기성자와 주나라 선왕의 대화에서, 공자와 여량폭포에서 수영하는 사람의 대화에서 다양하게 이 ‘잊음의 경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꼽추는 매미를 잊게 되자 매미잡이의 명인이 되고. 명궁사는 보상을 잊게 되자 과녁에 적중하며, 싸움닭은 상대방 닭을 잊게 되자 최고의 싸움닭이 됩니다. 수영하는 사람은 자신이 물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자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 마치 명연주자가 악기를 잊고 곡을 잊고 완전히 음악과 하나가 되어 악기를 연주하듯이, 김연아가 스케이트날을 잊고, 빙판을 잊은 듯 공연을 하듯이, 무당이 작두를 잊듯이 그렇게 잊음은 앎과 함의 최고의 경지입니다.
맨 처음에 인용해놓은 구절은 요임금 때 장인 공수의 솜씨를 예찬하는 글입니다. 그는 그림쇠나 굽은 자가 없어도 손으로 정확히 도안하고, 물건을 만들 때는 손가락과 물건이 동화되어 물건을 만드는 것조차 잊었으며, 그가 만든 물건들은 얼마나 명품들인지 물건을 쓸 때 그 물건을 쓰고 있는지조차 잊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삶을 통달하는 최고의 경지는 바로 잊음의 경지입니다. 망각(妄覺)과 같은 병적인 ‘잊음’이 아나라 앎을 넘어선 ‘잊음’의 경지 말입니다. 물고기는 주변의 물이 맑으면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주변의 공기가 맑으면 자신이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물이 오염되면 물고기는 물 밖으로 떠오르고, 공기가 오염되면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헉헉거립니다. 잊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며 최고의 경지인지 그제야 깨닫습니다.
좋은 신발은 안 신은 듯합니다. 좋은 옷은 거추장스럽지 않습니다. 좋은 친구는 없는 듯합니다. 좋은 말은 들리지 않는 듯합니다. 좋은 앎은 모르는 듯합니다. 좋은 행동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정말로 좋은 것은 우리에게 잊힌 채로 우리 곁에서 우리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관계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