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사상을 계승했다는 《장자》에는 도가의 창시자 노자 이야기보다 유가의 창시자 공자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내 따로 편집하여 《논어에는 없고 장자에만 있는 공자 이야기》라는 책자를 만들어 보관 중이거니와, 여러 장자 편 중에서도 특히 20편 <산목> 편에서 다양한 공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울러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는 뭔가 고정되어 있고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면, 《장자》에 특히 <산목> 편에 등장하는 공자는 자신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충고를 잘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바꾸는 아주 유연하고 도가스런 면모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나는 <산목>편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소제목을 붙여놓았습니다. ‘공자의 변신, 장자의 낭패, 열자의 깨달음’! 그중에서 공자의 변신 이야기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산목> 편에는 공자가 총 3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 변신 이야기는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중간에서 사람들에게 포위를 당해 위태로운 상태에 있을 때 대부 임(任)이 방문하여 나눈 이야기입니다. 공자는 마침 7일 동안이나 더운 음식을 먹지 못해 아사(餓死)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때 대부 임은 공자에게 동해에 살고 있다는 의태(意怠)라는 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새는 느리고 무능력해 보여서, 다른 새들이 이끌어 주어야 날고, 쉴 때도 다른 새 곁에 붙어 있습니다. 나아갈 때도 앞서지 않고, 물러날 때에도 뒤서지 않습니다. 먹이를 먹을 때도 먼저 먹지 않고 나중에 먹습니다. 그래서 이 새는 다른 새의 무리로부터 배척을 당하거나 사람들에게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 새 이야기를 꺼낸 것은 공자를 비판하기 위해서였지요. “곧은 나무는 먼저 잘리고, 맛있는 우물은 먼저 마르는 법입니다.” 당신을 보니 이와 같습니다. “지식을 꾸며 어리석은 사람을 놀라게 하고, 몸을 닦아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환하게 자신을 내세워 환난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 이야기를 들은 공자라면 화를 낼만도 한데, 오히려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사람들과 교류를 끊고, 제자를 돌려보내고, 큰 연못 가에서 가죽옷을 입고 도토리와 밥을 주워 먹으려 살게 됩니다. 드디어 짐승들 사이를 걸어도 무리가 흩어지지 않고, 새들 틈에 들어가도 행렬이 흩어지지 않게 됩니다. 새나 짐승이 그를 싫어하지 않게 되니, 하물며 사람이야 어땠겠습니까?
두 번째 변신 이야기는 공자와 노나라 은자 자상호의 대화에서 나옵니다. 공자가 자상호에게 신세한탄을 합니다. “저는 노나라에서 두 번 쫓겨났고, 송나라에서는 뽑힌 나무에 죽을 뻔했고, 위나라에서는 쫓겨났으며, 상나라와 주나라에서는 궁지에 몰렸고, 진나라와 채 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를 당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친한 사람과는 교분이 점차 멀어지고 제자들도 차츰 흩어지고 말았는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자상호가 자상하게 공자를 위로합니다. “임회라는 사람이 기나라에서 도망을 칠 때 천금의 가치가 있는 옥을 버린 채 아기만 업고 도망쳤습니다. 옥은 가볍고 아기는 무거우며, 옥은 비싸고 아기는 싼 데도 아기만 챙긴 것은, 옥은 이익으로 결합된 것이지만 아기는 하늘이 맺어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익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어려움과 곤란함에 처하면 서로를 버리게 되지만, 하늘이 맺어준 사람은 어려움과 곤란함을 당하면 서로 합쳐집니다.” 그리고는 사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지요.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술과 같습니다.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에 친해지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에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 맺어진 것은 까닭 없이 떨어져 나가는 법입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 놀랍게도 변신합니다. 이전의 학문을 끊고 책들을 버립니다. 제자들이 격식을 차려 인사하지 않아도 그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주윤발이 공자의 역할을 맡아 열연했던 <공자>이 한 장면. 굶주리고 지친 공자가 제자들에게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마지막 변신 이야기는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궁에 빠져 있던 첫 번째 이야기와 배경이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자가 사랑하는 제자 안회입니다. 공자는 칠일을 굶주렸으나, 마른 나뭇가지를 두드리며 신농씨의 노래를 부릅니다. 장단도 맞지 않고 운율도 없는 넋두리 같은 노래입니다. 안회를 이를 슬피 쳐다봅니다. 그때 공자는 안회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는 쉬 받아들이면서 삶의 변화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더구나. 하지만 사람이란 자연과 마찬가지.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부귀와 빈천, 벼슬과 실직은 서로 갈마드는 법이다. 벼슬이나 녹은 삶을 궁핍하게 만들지는 않으나 밖에서 주어진 것일 뿐 스스로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군자는 도둑질하지 않는 법인데 우리가 벼슬을 탐해서야 되겠느냐?” 안회는 공자의 말을 되씹으며 질문을 거듭하고, 공자는 이에 친절하게 하나하나 답한 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있는 것도 하늘이 있어서고, 하늘이 존재하는 것 또한 자연이 있어서다. 사람이 자연의 도를 터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성격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성인이란 편안하게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긴 채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다.”
세 이야기를 끝났습니다. 이제 공자는 논어에 나오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공자가 아니라 장자에 나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공자입니다. 나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불굴의 정신에 놀라지만, 장자에 나오는 공자의 유연한 변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어느 편에 나오는 공자가 진짜에 가까울까 논쟁하는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논어와 장자의 그 어느 중간쯤에 공자의 점이지대를 형성해놓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자연을 닮아가는 공자를 상상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공자의 변신은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