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한 낱말과 체험하지 못한 낱말은 자연이 솟아오르는 소리와 공룡이 땅을 내리찍는 소리만큼이나 간극이 크다. 자신이 몸과 정신으로 체험한 낱말을 사용해야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고 자유자재로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 가끔 멋부리고 싶어서 체험하지 못한 낱말을 쓸 때가 있는데 여지없이 체하거나 탈나서 뱉어내야 한다.
체험한 낱말의 개수가 살아온 나날만큼 늘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체험하고 싶은 낱말을 수집하는 일은 매우 설레는 일이다. 우리 십대 시절에 '사랑'이 꼭 그러했던 것처럼. 그런데 당신에게 사랑은 체험한 낱말인가, 체험하고 싶은 낱말인가. 체험해서 잘 아는 것인가, 아직 체험하지 못해 잘 모르는 것인가. 세상엔 이처럼 알쏭달쏭한 낱말도 적지 않다. 인간뿐 아니라 낱말 하나도 소우주다.(83,84쪽)
- 유선경, 《어른의 어휘력》 중에서
말과 글을 부리고 사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때로 말문이 막히고 글에 갇힐 때가 있다. 요즘은 점점더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일종의 우울증일 텐데, 이럴 때는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고 가만히 놔둔다. 시간이 필요한 상황임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는 처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짐작하겠지만, 독서가 나의 처방이다.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최근 들어 읽은 책이 유선경이 쓴 《어른의 어휘력》이다. 앞부분을 읽다가 깨달은 건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는 것. 분명 책꽂이 어딘가에 있거나, 도서관 정리할 때 남에게 주었을 터. 하지만 뭔들 어떠라. 다시 읽어도 새롭다. 증세가 호전되었다. 나도 이제 책쓸 때가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