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9 : 이것은 물이다

2023. 6. 17.

by 김경윤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있었지, 얘들아? 물이 괜찮아?”

어린 물고기 두 마리는 잠깐 동안 말없이 헤엄쳐 가다가
결국 물고기 한 마리가 옆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이것은 물이다》 중에서





"데이비드 월리스라는 작가를 알아?"

박학다식이라면 둘째가 서러운 사월의 책 대표 안희곤이 물었다. 나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아니, 모르는데. 유명한 작가야?"

안희곤은 장난끼 섞은 표정으로,

"세상에 월리스를 모르다니. 무슨 책을 읽은 거야?"

마치 월리스를 모르면서 절대로 안된다는 단호함이 묻어있다.

"그렇게 유명해?"

"일단 읽어봐."

"무슨 작품을 읽어야 하는데?"

"제일 유명한 작품은 《무한한 재미》지만 번역이 아직 안 됐어.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 소설’ 중 하나인데 아직도 번역이 안 된 것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때문이기도 할 거야. 우선 급한대로 그의 에세이를 읽어봐. 《이것은 물이다》가 제일 짧은 책이니까. 우선 그것부터 읽어보도록!"


안희곤의 추천으로 《이것은 물이다》를 주문하고 그의 약력을 살펴보았다. 1962년에 뉴욕에서 태어났으니 나보다는 선배다. 2008년에 4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니 길게 산 인생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으니 나와 묘하게 겹친다. 그를 평생 괴롭힌 것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이었다. 그는 죽기 마지막 날까지 원고를 정리하고 유서를 썼다. 그는 10권 가까운 책을 썼으나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반도 안 된다.

주문하고 며칠 있다가 《이것은 물이다》가 도착했다. 책으로 쓴 것도 아니고, 케니언 대학의 졸업 축사를 엮은 것이다. 그러니까, 연설문을 책으로 만든 것.

인용구는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화두이자 질문이다. 월리스는 차분하게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물과 같은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똑 같은 현상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인문학적으로 해석할 때의 차이점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차분히 설명한다. 연설문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깔끔한 에세이 같은 이 글을 읽으며, 나라면 어떤 연설문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월리스는 연설문의 끄트머리에서 처음에 했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진실은 죽기 전의 삶, 현세에 관한 것입니다. 서른 살까지, 혹은 쉰에 이를 때까지도 자기 머리를 총으로 쏘아버리고 싶어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진실입니다.

진정한 교육의 진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내 뜻입니다. 성적이라든가 학위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다만 깨어 있는 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고 근본적인, 우리 주위 환히 보이는 곳에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현실, 매일 끊임없이 그 존재를 스스로 깨우져주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현실, 그런 현실을 알고 살아가는 각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물입니다. 이것이 물입니다."


다 읽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이 연설문을 읽고, 3년 후에 작가는 죽었다. 평생 우울증을 앓고 살았던 그의 명복을 빈다. 앞으로 그의 책을 꾸준히 찾아 읽겠다고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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